수넴 여인 의 믿음 - sunem yeoin ui mid-eum

제 18-19호
수넴 여인의 뜨거운 모정 
왕하 4:8-35

어버이주일을 맞아,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주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 가운데서 자라갈 수 있도록 양육했는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이를 위해 오늘은 수넴 여인의 뜨거운 모정을 통해 참된 신앙의 부모와 자식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신앙의 어머니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위대한 신앙의 어머니들 다섯 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그녀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었지만 믿음으로 이삭을 낳음으로 열국의 어미가 되었고, 모든 민족의 열왕이 그녀를 통해 나게 되었던 것입니다(창 17:16). 두 번째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모세를 키우고, 신앙으로 양육하여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도자로 양육했습니다. 요게벳의 뜨거운 기도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 자식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모세가 그처럼 위대한 영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입니다. 그녀 또한 마른 나무와 같이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지만, 남이 보기에 술 취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에 태양과도 같은 밝은 빛을 사무엘을 통해 비추었다면, 이 모든 역사가 그를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철저히 양육한 결과인 것입니다. 네 번째는 왕후 에스더입니다. 그녀는 하만의 간계로 이스라엘 전 민족이 멸절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들어가 진언함으로써 구해 낸 위대한 신앙의 어머니입니다. 에스더의 믿음으로 순식간에 수백만의 이스라엘을 새롭게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수넴 여인입니다

2. 수넴 여인의 신앙과 모정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은 그 이름도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참신앙과 부모로서 뜨거운 모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데 주밀했습니다. 

  본문 왕하 4:13에서 엘리사 선지자는 수넴 여인을 가리켜 ‘생각이 주밀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밀(周密)하다’는 ‘무슨 일이든지 빈 구석이 없고 자세하다’는 뜻으로, ‘주도면밀하다’의 줄임말입니다. 

  성경을 볼 때, 한 개인이나 나라가 여자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함으로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개들에게 시체를 물어뜯기는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왕하 9:7-10, 30-37). 이것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 때문입니다(신 7:2-4). 그러므로 아합 왕가의 비참한 최후는 어찌 보면 그의 아내를 잘못 얻은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은 주밀한 여자요 현숙한 여인이며(잠 31:10), 어진 여인(잠 12:4)으로서, 남편과 가정에 큰 복을 실어다 준 여인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엘리사 선지자를 집으로 모셔 식사를 대접하고, 또한 남편에게 말하여 그를 위해 방을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본 이후로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극진히 대접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하루 이틀은 정성스럽게 대접하지만 1주일, 한 달, 시간이 길어지면 처음 마음과 같지 않고 불평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수넴 여인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똑같은 마음으로 대접했습니다. 그 결과로, 남편이 늙고 자녀가 없던 이 가정에 하나님께서 귀한 아들을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왕하 4:16-17). 

  2)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믿음으로 산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수넴 여인의 위대한 신앙은 그녀의 아들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또 한 번 나타납니다. 아들이 죽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만 오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남편한테도 말하지 않은 가운데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러 갔던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식이 죽었는데 통곡하지 않고 남편한테 말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녀는 선지자한테 가서도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엘리사 선지자의 발을 간절히 붙잡고 ‘집에 한 번만 가시자’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오기만 하면 낫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위대한 신앙입니다. 

  성경은 ‘대접한 대로 대접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마 10:40-42). 그렇다면 이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평범한 사람으로 보고 대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믿고 대접을 했기에 생명의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 론 : 수넴 여인의 주밀하고 철두철미한 신앙과 믿음은 어버이주일을 맞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분만 자기 집에 오면 죽은 아들도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 앞에 나아갈 때 원하는 소원대로 축복을 받은 것이 수넴 여인의 가정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수넴 여인과 같이 모든 생활에 짜임새 있는 어머니들이 되어서,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에 평안과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4장 18~37절, 8장 1~7절

수넴 여인 그리고 그녀의 늙은 남편은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얻고 난 뒤 얼마나 기쁨 넘치는 삶을 살았을까? 농가의 부잣집에서 그 아이는 옥동자로 애지중지하며 키워졌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 아이가 몇 살쯤 됐을지 정확히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 아이가 갑자기 심한 두통을 그 아비에게 호소하기 시작한다.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왕하 4:19)

이때, 이 아이의 아비는 얼마나 놀랬을까? 榴?놀란 나머지 사환에게 빨리 그 아이를 어미에게 데려가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이 귀한 아들은 엄마에게 갔으나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고 만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왕하 4:20)

이 순간 수넴 여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늦둥이 아들 그것도 얼마나 어렵게 얻은 귀한 아들인데 그 아들이 지금 그녀 품안에 주검이 되어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리다니….

이게 꿈이란 말인가. 아님 현실 속의 일이란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 앞에서 천하를 얻은 듯한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아들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선지자를 찾는 여인

너무도 기가 막힌 상황에서 보통의 여인 같으면 통곡하고 절망하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원망하고 슬퍼했을 텐데 수넴 여인은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무엇인가 행동에 나선다. 그녀는 우선 그 죽은 아이를 장례식을 치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 즉 엘리사의 침상에 눕혀놓는다. 그리고는 그녀는 남편에게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이에 남편은 지금 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어찌하여 선지자에게 나갈 수 있냐고 만류하지만 수넴 여인은 “평안이니이다”(It’s all right)라고 남편에게 말하고는 곧바로 사환을 데리고 엘리사를 향해 달려간다.

갈멜산까지 엘리사를 찾아간 수넴 여인은 사환 게하시가 묻는 질문에는 그저 가족이 평안하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보자 그녀는 그의 발은 안으며 그녀의 이 참혹하고 슬픈 마음을 가누질 못한다. 그리고는 엘리사에게 말하길 “내가 언제 당신에게 아들을 구했습니까? 나는 오히려 당신에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그녀의 슬프고 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왕하 4:28)

사실, 수넴 여인은 선지자 엘리사를 물질과 마음으로 온전히 섬기면서도 선지자에게 아이를 달라고 직접 조르거나 구한 적이 없다. 그 말이 맞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당신이 아이를 주신다기에 그때 내가 나를 속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지금 이 아이를 하나님이 다시 데려가셨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데려가실거면 차라리 저에게 아들을 주시지 말지 그랬습니까?” 어쩌면 수넴 여인의 이 짧은 말은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여인은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고 강하게 말한다.

이 말은 곧 내 아이가 죽었지만 나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 곁을 떠나서 살지 않겠다는 강한 믿음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코 아이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하나님의 사람을 배척하고 밀어내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이 여인의 담대한 믿음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믿음이 더 큰 역사를 부른다

이 수넴 여인의 너무도 귀한 아들이 죽게 된 것을 알게 된 엘리사는 어떻게 하는가? 그는 문을 닫고 여호와께 먼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리고는 죽은 아이의 시체 앞에서 엘리사는 너무도 기이한 행동을 한다.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왕하 4:34)

사실, 엘리사의 이 행동은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죽은 자와 접촉하는 것을 불경한 것으로 금지했지만 그는 감히 죽은 자와 눈과 입까지 마주치며 한 몸이 되는 일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일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크신 일을 보는 듯하다. 그분은 우리와 하나됨으로 우리의 죽음을 그분 스스로 넘겨받으셨지 않은가?

엘리사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은 자의 몸에 자기 몸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접촉함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옮겨지는 기적을 몸소 보게 된다.

“엘리사가 내려서 집안에서 한 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왕하 4:35)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믿기가 힘들지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일으켜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이기에 엘리사를 통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선보이신 것이다.

엘리사가 방안에 문을 잠그고 들어가 있을 때 수넴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죽은 아들이 엘리사를 통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을까?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미 아들을 얻으면서 체험했기에 엘리사를 통해 어떤 기적의 역사가 또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바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수넴 여인은 죽은 아들 장례도 미루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제일 먼저 급하게 달려갔던 것이다.

이제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수넴 여인을 방에 들어오게 한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말하길 “네 아들을 취하라”고 말한다.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왕하 4:37)

그녀의 무릎에서 싸늘하게 죽었던 아이가 이제 다시 살아 그녀 품에 따뜻한 체온을 지닌 채 안기게 되었다. 이 얼마나 심장이 떨리는 놀라고 경이로운 일인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결코 하나님의 사람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았던 수넴 여인은 천하보다 귀한 아들을 다시 선물로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뿐 아니라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수넴땅에 기근이 있을 것을 미리 알려주어 흉년에 권속들과 함께 블레셋 땅으로 기근을 피해 살 수 있게 된다.(왕하 8:1~3)

그런데 블레셋 땅에서 7년을 살고 돌아와 보니 그녀의 살았던 부잣집의 집과 전토가 다 다른 사람 소유가 돼버린 기가 막힌 상황에 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에도 게하시를 통해 엘리사가 죽은 자를 살린 소식이 왕에게 들어갔고, 바로 그 여인이 집과 토지를 다 잃어버려 억울함을 당한 일이 왕에게 전해지게 된다.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왕하 8:6)

수넴 여인, 그녀는 이름 없는 수넴 지역 부잣집 평범한 농부의 아내였다. 자기가 가진 물질과 마음을 다해, 목적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섬김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또한 아들의 죽음 앞에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람을 떠나지 않겠다는 굳건한 믿음을 지닌 여인이었기에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기적의 역사를 보게 하셨다.

이와 함께 흉년 이후 고국에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비참한 지경에 놓여 있을 때도 왕 앞에까지 나아가 억울한 상황을 호소함으로 그녀가 가졌던 집, 토지 등 부유함을 다시 돌려받은 놀라운 축복을 안게 되었다.

그녀는 이름도 알 수 없을 만큼 너무도 평범한 아낙이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선지자를 섬겨 죽음에서 생명을 보았고, 물질의 축복까지 받았다. 이 얼마나 복된 여인인가.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많지 않을지라도 마음과 정성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순수하게 섬긴다면 놀라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적을 볼 수 있게 역사해 주실 것이다.

정현숙 /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