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신고 안하는 이유 - seongbeomjoe singo anhaneun iyu

성범죄의 증가

작년 이맘때, 연합 뉴스의 성폭력 관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경찰청에서 최근 발간한 KOSIS 국가통계포털의 '2017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체 범죄 건수이며, 이는 총 166234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1849450)에 비해 약 10.1%가 줄어들었으며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20141778966건에서 20151861657건으로 늘었다가 2016년과 2017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체 범죄 중, 살인·강도·절도·폭력·사기 등 범죄는 감소하는 반면, 성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24110건으로 전년보다 약 8.6% 증가했다. 이는 20142155, 201521286, 201622200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 가운데 유사강간을 포함한 강간 범죄자의 절대다수는 남성(98%), 피해자의 절대다수는 여성(97.8%)이었다. 또 범죄자의 범행 시 정신상태는 정상인 경우가 41.2%로 가장 많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29.1%를 차지해 이를 통해 '주취(酒醉) 범죄'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범죄 행위를 음주의 탓으로 돌리거나 심신 미약으로 감형을 받은 판결 사례를 많이 보았는데, 나는 수많은 성범죄자들의 범죄 행위는 결단코 그 어떠한 주변의 탓이 아닌 본인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왜 피해자들은 신고하기를 두려워 할까?

많은 여성들은 성추행, 성희롱과 같은 범죄가 매우 일상적이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학교에서, 술자리에서 등 너무나도 익숙한 곳에 성범죄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몸매나 얼굴에 대한 타인의 품평이 성희롱으로 다가온 적이 너무나도 많았고 몇 명의 남성들이 생각 없이 한 행동을 계속해서 곱씹게 되고 더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성범죄가 만연한데, 과연 국민을 지켜야 하는 나라와 법은 성범죄 피해자들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우리나라 성폭력 피해 여성 1000명중 신고자가 약 100명이라면 실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4명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 통계에 속하지 않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신고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고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법과 나라가 피해자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온갖 아픈 화살은 다 쏘아 놓고 정작 다들 나 몰라라 하기 때문이며 피해자를 위한 제대로 된 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첫 번째로 가장 큰 문제인 성범죄 관련 법의 맹점과 이어서 2차 가해에 대하여 설명할 것이다.

성범죄 관련 법의 실태 : 강간

강간의 경우 사전적 의미로는 폭행·협박에 의하여 상대방의 반항을 곤란하게 하고 사람을 간음하는 것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등재된 법률용어사전에 의하면, 폭행·협박의 정도에 관하여는 강도죄의 그것과 같이 해석하여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에 이를 것을 요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통설은 반드시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것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것도 포함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법원도 본죄의 폭행·협박은 상대방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족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폭행 및 협박, 그렇다. 솔직히 뉴스나 기사거리에서는 강간 피해자들이 다들 손발이 묶였거나 심한 폭력으로 인해 , 또는 약물로 피해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강간을 한 사건들이 비춰진다. 사실 대부분의 강간 피해는 이와 같은 방법이 아닌 심리적인 공포와 가해자가 유리한 공간, 가해자가 유리한 조건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꼭 피가 나고 멍이 들어야만 폭력이 아니다. 하지만 법은 증거를 원하고 법이 원하는 증거를 남기는 가해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강간이라는 사건이 일어난 전후에 피해자가 수차례 거절하고 싫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악랄한 이기심을 표출한 가해자 행위의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국가에서 알려주길 바란다. 또한 본인이 그 상황이 되어보지 못했으면서 나였으면~ 할 텐데, 왜 가만히 있었대?’등과 같이 주제 넘는 판단은 삼가야한다.

강간은 대부분 남이 보고 있는 곳에서 이뤄지지 않기에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불리하기도 하다. 왜냐면 앞서 말했다시피, 법이 원하는 증거가 없는 경우, 대부분의 성범죄 사건은 불기소 처리가 된다. 미국의 경우엔 성관계가 싫다고 명백히 말하였는데도 강제로 이루어진 성관계는 강간이 성립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법원이 본죄의 폭행·협박은 상대방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족하다고 판시한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증거 없이는 기소판결과 유죄성립이 되지 않는다. 정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분명히 싫다고 몇 번씩이나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강압적으로 성사시킨 성관계가 과연 피해자가 응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설득당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강압적인 가해자를 이길 수 없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기에 피해자에게는 살기 위한 포기와 몸부림일 것이다. 이를 동의로 여기는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란다.

또한 협박의 정도가 너 가만히 안 있으면 죽일 거야와 같이 목숨을 가지고 말해야만 해당되는가? ‘적당히 해라,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조차도 당시의 피해자에겐 협박이 될 수 있다. 피해자 본인에게 그 말이 무섭고 숨통이 죄여오는 말이었다면 그 말이 왜 협박이 되지 않는지 너무나도 큰 의문이다.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의 정도를 가해자의 말 한마디로 검사나 판사가 함부로 판단하는가? 피해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상황을 본인이 쥐락펴락하며 그들의 입맛대로 피해자를 판단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어떻게 이러한 사회 속에서 피해자들보고 왜 신고하지 않냐며, 피해자에게 흔히 말하는 사이다를 기대하는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도, 행복도 아니다. 단지 가해자를 향한 처벌이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무례한 그들의 2차 가해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조사 과정에서 돌아오는 2차 가해이다. 그때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냐, 싫다고 나오면 되는 것 아니냐, 진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냐, 정말 싫었냐, 왜 싫었냐 등2차 가해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무례한 질문들, 이 질문들은 실제 조사과정에서 피해자가 검사에게 들은 질문들이라고 한다. 이 질문을 들은 피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간략히 말해보자면 그런 질문들은 강간 피해 속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이성적인 판단들이며, 싫다고 말했는데 불구하고 못 가게 막거나 조르는 행위도 성적 수치심에 이르게 한다. 진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는 제 3자가 판단할 수 없다. 바로 옆에 문이 있다 해도 손 뻗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탈출 행위를 감행하는 모습을 들킬 때 그 이후에 일어날 무서운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인가. 피해자라고 도망가기 싫었을까? 피해자의 마음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려 들지 마라. 싫은데 무슨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며 그게 피해 사실과 얼마나 중요한 연관성을 지니는지 모르겠다.

가해자의 대부분이 강간 사실에 대한 이유를 말할 때진짜 싫어하는지 몰랐어요, 그냥 비싼 여자인척 튕기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싫다는 말이 왜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그건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검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비싼 여자, 싼 여자, 쉬운 여자, 어려운 여자가 어디 있는가? 거절하면 비싼 여자인가?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사람을 값으로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수준 낮은 생각인지 깨닫길 바라며, 싫다는 상대에게 계속해서 구걸하는 본인의 모습에 무엇이 문제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말하는 중립

왜 피해자들은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마땅한 나라와 법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야 하는 것이며, 그들이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얼마나 더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는가? 공론화 이후 수많은 화살이 피해자에게 향해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럴 만 했겠지, 그런 옷을 입고 다니니까 당하지, 사실은 쟤도 원했던 거 아니야?, 거짓말 같은데, 꽃뱀이네, 돈 뜯어 낼려고 저러네 등공론화된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진 실제 댓글들을 간추린 것이다. 그들이 생각 없이 두드리는 키보드에 가해자는 미소 짓고 피해자는 무너진다.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고 싶다. 피해자들을 향해 내뱉는 그 무례하고 하찮은 말들은 꼭 본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왜냐면 중립적인 입장은 피해자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침묵과 방관하는 태도는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니까. 가해자가 유리한 현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절대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그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았고 그들이 피해자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피해자의 말을 믿는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수많은 가해자들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아무런 책임도 다하지 않고 단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어야 하는가? 반면에 피해자들은 계속되는 트라우마로 미칠 것만 같은 삶을 살아가고, 억울해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오고, 자살시도까지 해가며 이 나라와 스스로를 탓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잘못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살아가는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다. 법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는 법의 얕은 울타리 속에 또 2, 3의 피해자가 생겨선 안 될 것이다. 가해자들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쩌면 혼자서 그 아픔을 앓고 있을 그대들에게

우리가 침묵하면 침묵할수록 신고 되지 않는 성폭행 범죄가 더 많아질 것이고, 더 많은 가해자들이 똑같은 행위를 반복해 더 많은 피해자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자신의 목소리로 아픔을 외치고 제 3자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함께 동참한다면 성범죄 법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점차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피해자가 현재의 사법체계를 개선하는 데 주도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이며, 더 많은 범죄에 유죄 판결을 내리고 더 많은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함이다.

성폭력이 한사람과 그의 가족 모두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는다. 우리는 현실에 결코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서 외쳐야만 한다.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하겠지만, 그럼 내가 안하면 누가 하는가. 우리가 돕지 않으면 또 누가 도와주는가. 사회의 변화라는 크고 거창한 목표를 가지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단 각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법이 지켜주지 않기에,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두려워서 말하지 못한 그 끔찍한 그날의 사건이 누군가에겐 그저 남 일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성폭행, 강간과 같은 일이 입에 담기도 싫은 일,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 내 딸이나 여동생이 당했다면 사생결단 그 상대를 해치거나 죽이고 싶은 일이라면 여자가 꼬리를 쳤으니까, 비싸게 굴지 않으려 튕기는 것이라는 파렴치한 주장을 인정해서도 안 되며, 그렇게 만든 사회적인 책임도 회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절대로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니 숨지 않아도 괜찮다. 숨어있게 만든 사회를 탓하고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가해자를 원망해도 괜찮다. 아파해도 괜찮으니 무너지지 말길, 앞으로 그대들이 걸어갈 길은 화창한 날들의 연속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허신영 /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