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는 제 블로그에서 메뉴를 만들어 집중 파헤쳐 볼까 했으나 난해하고 심오한 문학적 깊이에 감히 범접할 수가 없어서 포기했던 영화입니다. 약간 모호해 보이는 결말 부분만 분석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오대수(최민식 분)가 최면술사를 만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장면 이전에 이우진(유지태 분)은 최민식에게 복수를 한 다음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복수가 끝나고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누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했나 봅니다. 영화 중에 이우진의 대사에서 자살에 대한 암시가 살짝 나오죠.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한 복수의 내용이 좀 복잡합니다. 오대수가 감옥에 15년 동안 감금된 동안 그의 아내는 살해 당했고 오대수는 살인범의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 미도는 자라서 성인이 되었고 오대수와 잠자리를 같이 했군요. 미도는 오대수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모르지만 오대수는 미도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 오대수는 혀가 잘려서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군요. 이우진은 복수를 한 다음 속 편하게 죽을 수 있었지만 오대수는 죽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딸 미도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 오대수는 괴로운 기억을 머리 속에 가진 채로 미도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미도는 오대수를 연인으로 대하겠지만 그럴 때 마다 그의 기억이 그를 괴롭히겠죠. 여기서 이우진이 오대수를 죽이려다가 죽이지 않았던 장면을 리와인드 해볼만 하군요. 이전 장면에서 이우진은 오대수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쏘려다가 쏘지 않고 리모콘을 오대수에게 줍니다. 오대수는 리모콘이 이우진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리모콘이라고 생각하고 누르지만 그것은 녹음기의 리모콘이었고 녹음기에서는 오대수와 미도의 정사 장면을 녹음한 내용이 흘러 나옵니다. 오대수는 괴로워 하지만 이우진의 복수의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퇴장하는군요. 그리고, 오대수를 쏘려고 했던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이우진의 복수는 순간적으로 오대수를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오대수가 평생 가지고 가야할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오대수는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서 최면술사를 찾아갑니다. 이우진과 있었던 일, 미도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잊고 싶었던 것이죠. 오대수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글을 써서 최면술사에게 보여줍니다. 글의 끝 부분이 잠시 나오는데 "제게는 혀가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군요. 최면술사는 오대수의 글을 읽고 솔직히 도와줄 이유는 없지만 마지막 한 줄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는군요. 그것은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거 아닌가요?" 이 구절은 영화 초반에 강아지를 안고 자살했던 아저씨가 했던 말이죠. 왜 이 구절이 반복되었는지 영화 초반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화 초반. 오대수가 15년 감금되었다가 아파트 옥상에 풀려나는 장면입니다. 15년 동안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 오대수는 옥상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다가가서 어루만지는군요. 사람 구경을 한 것 만으로도 감격스러웠겠죠.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사람은 곧 투신자살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입니다. 자살남은 무슨 사연때문에 죽으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유언인양 "아저씨 제가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거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오대수는 자살남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군요. 감옥에서 나와 처음으로 사람과 나눈 대화이자 오대수 자신의 심정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말이라서 따라 했나 봅니다. 이 대사가 오대수의 마음에 강하게 각인되었겠죠.
자살남은 오대수의 말을 다 듣고 자신의 사연을 말하려고 합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기도를 했다가 우연치 않게 살아나게 되면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이 생긴다고들 하죠. 이미 죽은 목숨이니 다시 한번 살아보자는 용기도 생긴다고 합니다. 오대수의 사연을 다 들은 자살남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기구한 자신의 사연을 말하려고 하지만 오대수는 떠나버립니다. 오대수는 자살남을 이해하고 용기를 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죠. 결국 자살남은 자살하고 오대수는 그 광경을 뒤로 한채 조소를 날리면서 떠납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 시리즈에서 복수 속의 작은 복수 코드가 등장하는데 이 장면이 일종의 작은 복수인 셈입니다. 자살남에게 원한 같은 것은 없겠지만 세상을 향해 빅엿을 먹이는 장면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오대수가 자살남의 사연을 들어주지 않아서 자살남이 죽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자살남이 남겼던 마지막 말을 인용했군요. 이 상황에서 오대수는 정말로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최면술사는 이 글귀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는군요. 최면술사는 잘못하면 기억이 헝클어질 수도 있다면서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하면서 최면을 겁니다. 최면은 이우진의 펜트하우스에서 시작됩니다. 유리 앞에 서 있는 오대수. 종이 울리자 오대수와 몬스터로 분리되는군요. 여기서 비밀을 모르는 쪽이 오대수, 비밀을 아는 쪽이 몬스터로 설정되었고 다시 한번 종이 울리면서 몬스터가 뒤돌아 서서 걸어갑니다. 한 걸음에 1년씩 늙어가는 거죠. 결국 몬스터는 일흔살에 죽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어요. 매우 편안한 죽음이니까요. 행운을 빕니다. 그리고, 필름이 끊어지는군요. 의식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나 봅니다. 최면의 내용데로라면 오대수와 몬스터로 분리되어 현실에는 오대수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눈 밭위에서 정신을 차린 오대수. 그에게 미도가 다가옵니다. 과연 오대수의 기억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대수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니 발자국과 빈 의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면은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도가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말하자 오대수의 표정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웃는 듯 하다가 점점 우는 듯한 모습. "웃어라 세상이 너화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마지막 장면에서 이 표정은 몬스터가 오대수의 비밀을 가지고 떠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대수+몬스터=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것이죠. 그는 이제 평생 몬스터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한 복수는 이토록이나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최면술사의 말도 잔인하게 남는군요. 몬스터는 일흔살까지 살다가 죽게 되니 오대수 역시 일흔까지 괴로운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겠죠. 매우 편안한 죽음이 되지는 못하겠죠. 최면술사 역시 오대수에게 엿을 먹이고 가는군요. 엔딩씬에서 오대수와 미도가 함께 웅장한 산을 바라보는 장면이 인상적이군요. 둘이 헤쳐나가야 할 삶은 저 험한 산 만큼이나 험하겠죠. 추가)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라는 명언은 엘라 월콕스라는 시인의 시 "고독"의 첫 구절입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말하는 듯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의 오대수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을 수용하면서 죽는 날까지 괴로움을 즐기라는 저주스러운 말이죠. 추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1800년대의 작가 뒤마의 소설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결혼식 도중 체포된 기구한 운명의 남자가 감옥에 수감된 도중에 탈옥하여 크리스토 섬에 잠입해서 보물을 찾고 재력과 기지를 이용해 자신을 감옥에 가둔 일당들에게 복수하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변신해 하이디 공주와 결혼한다는 파란만장한 대하극 입니다. 오대수는 즐거운 딸의 생일에 납치되어 15년 동안 감금 당한 다음 출옥해서 자신의 딸과 만나는군요. 그러나, 자신의 딸과 연인 관계를 맺으며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점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과는 대조적입니다. 마지막 웅장한 설산을 바라보는 장면은 파란만장한 비극적 결말을 대변하는 것 같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