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세카이(世界)」 초대 편집장이 쓴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1937년에 출판되었다. 벌써 80여 년 전 일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책을 읽는 순간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배선에 앗, 하고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라고 말했고,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는“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게 하는 흔치 않은 책”이라고 평가했다.

책을 쓴 이는 요시노 겐자부로이다. 한국인에게는 낯설겠지만,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편집인이다. 1945년부터 1965년까지 「세카이(世界)」의 초대 편집장을 지내며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담론을 이끌었다. 「세카이」는 이와나미(岩波)서점에서 발행하는 비판적 성격의 잡지로 1950~1960년대에 20만부의 발행 부수를 자랑했다. 요시노 겐자부로는 당시 일본 편집인들로부터 최고의 편집인으로 존경받았다.《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책이 출판된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해다. 유럽에서는 파시즘이 여러 나라를 위협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검은 구름이 온 세계를 뒤덮던 때였다. 일본에서는 군국주의가 확산되면서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크게 제약을 받았고,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은 격심한 탄압에 시달렸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청소년 책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요시노 겐자부로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인본주의 정신을 지켜 내고자 했고, 청소년들만이라도 나쁜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 낸 청소년이야말로 다음 시대를 짊어지고 나갈 소중한 자원이며, 청소년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으므로 그들에게 편협한 국수주의와 반동사상을 뛰어넘는 자유롭고도 풍요로운 문화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은 이러한 간절한 희망의 산물이다.

태평양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금서가 되기도 했지만 100년 가까운 세월에도 이 책이 여전히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으로 사랑받는 까닭은, 자본이 인간성을 제압한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한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 시기는 버겁고 외롭다. 힘든 아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던지는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책처럼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게 하는 책은 흔치 않다.”는 안광복 선생의 평가는 개인주의가 절정에 달한 지금, 이 책이 사랑받는 까닭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열다섯 살 코페르의 방황 그리고 성장
주인공 코페르는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생이다. 본명은 혼다 준이치이고 코페르는 외삼촌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별명이다. 외삼촌과 함께 백화점 옥상에서 긴자 거리를 내려다보던 어느 날 코페르는 삶과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하기 시작한다. 십대의 인생에 말 걸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 때 코페르는 사람들이 ‘분자’ 같다고 생각한다. 외삼촌은 코페르의 생각을 듣고 코페르니쿠스의 인식론적 전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곧 코페르가 자기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했음을 지적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지켜가기를 당부한다. 그 뒤부터 코페르에게 생기는 사건과 관계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가난한 유부 가게 아들 우라가와를 놀리는 야마구치 패거리들에 맞서는 기타미, 미즈타니와 친구가 되고, 공부도 못하고 수업 시간에 만날 잠만 자는 우라가와가 유부 만들기의 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진정한 발견의 의미와 생산 관계 그리고 가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야마구치 패거리가 기타미와 친구들에게 린치를 가하고 코페르는 옆에서 지켜볼 뿐 함께 싸우지 못한다. 비겁한 놈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코페르에게 엄마가 학창시절 돌층계의 추억을 이야기해준다. 코페르는 친구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쓰고 친구들은 앓고 있는 코페르에게 찾아온다. 코페르는 이 과정에서 인간의 고뇌와 잘못의 위대함, 그리고 진정한 용기에 대해 깨닫는다. 다시 봄이 오고 코페르는 정원에 핀 수선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엄마가 사준 만년필로 외삼촌처럼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한다. 코페르의 방황이 성장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처럼 코페르는 꿈과 현실, 이웃과 사회를 향한 애정과 관심, 가난한 친구에게 보여주는 꾸밈없는 우정, 영웅에 대한 뜨거운 숭배,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비겁함, 왕따와 학교폭력 따위의 문제와 씨름한다. 이것은 십대들이라면 누구나 겪고 고민하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이런 고민과 방황은 사소할지 몰라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과 방황은 올곧은 방향으로 유도될 때 가치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휴머니즘적 세계관, 진보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는 외삼촌의 조언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멘토링
바야흐로 21세기는 스토리텔링과 멘토링의 시대다.《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바로 이 스토리텔링과 멘토링이 있다. 10개 꼭지마다 앞에는 코페르의 일상이 있다. 이 일상은 곧 코페르의 성장과 방황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 뒤에 외삼촌의 노토가 이어진다. 외삼촌은 노트에서 코페르의 고민에 철학·종교·과학·경제학을 아우르는 지식을 바탕으로 친절하게 답한다. 요즘 말로 멘토링이다. 여기서 코페르는 방황하는 십대들이며 외삼촌은 광란의 파시즘에 맞서는 지식인 곧 지은이 자신이다.

“외삼촌, 사람은 정말 분자인 것 같아. 오늘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 (중략)
“···오늘 네가 스스로를 넓은 세상의 분자로 여겼다는 건 정말 큰 사건이란다. 나는 오늘 네가 겪은 일이 네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를 바란다. 오늘 네가 느꼈던 감정, 네가 떠올렸던 생각은 아주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단다. 네 인생의 관점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것이니까.”

스토리텔링이나 멘토링이라는 말이 제대로 개념화도 되어 있지 않던 80여 년 전에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아마도 청소년들에게 군국주의의 진실을 밝히고 희망을 선물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절실한 마음이 이렇게 시대를 앞선 이야기 방식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중앙포토]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철회하고 만들 신작의 제목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로 정했다.

29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미야자키 감독은 전날 도쿄의 와세다대에서 열린 한 이벤트에 참석해 팬들에게 신작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영화의 제목은 1937년 발간된 요시네겐자부로의 책 제목과 같다. 중학생 주인공이 갖게 된 삶에 대한 의문에 대해 멘토인 삼촌이 일기와 대화로 답하는 형식의 책이다. 오랫동안 일본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평가받아왔고,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미야자키 감독은 신작 애니메이션의 내용에 대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주인공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며 “완성까지 3~4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최근작 ‘바람이 분다’가 일본에서 상영 중이던 2013년 9월 “장편 애니메이션 이외의 일을 하겠다”며 은퇴를 선언했지만 지난 2월 번복했다. 지난 5월에는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신작 준비 착수 소식을 전하며 “연령으로 봤을 때, 이번에야말로 최후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야자키 감독은 1997년 ‘모노노케 히메’를 만든 뒤,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 후에도 각각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했었다.

이가영 기자

기다렸던 작품이었어요. 스튜디오 지브리가 더이상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은 상황이라서 더 그랬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께서 '그대들 어떻게 살것인가' 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본적이 있긴합니다만...

40대 남자 둘이서 이걸 봤다는거 아닙니까 ㅋ. 요네바야시 감독이 지브리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지브리의 많은 작품들이 떠올랐습니다. 감독이 이번 작품은 마녀배달부 키키를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스튜디오 지브리를 퇴사해 스튜디오 포녹에 둥지를 튼, 마루밑 아리에티와 추억의 마니를 만들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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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작중인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라인업 (진짜임)

(이 글에서 어린이용 애니는 제외했습니다) 나노리스트 하우스키퍼 청춘블라썸 시즌1 더 복서 시즌1 용이 산다 유미의 세포들 퇴마록 여신강림 외모지상주의 낮에 뜨는 달 연의편지 구미호뎐 달빛조각사 + 봉준호 감독의 심해어 + 기타등등 1. 스튜디오 게일 웹툰 <나노리스트>, <하우스키퍼> 애니화 (스튜디오 게일 = 뽀로로, 타요 제작사) 2. 두루픽스 <용이 산다> 두루픽스는 <좀비딸> <마음의소리> 제작사 <좀비딸>은 EBS에서 방영했음 3. 제작사 '싸이더스 애니메이션'의 두 작품 3-1. <유미의 세포들> 애니메이션 극장판 개봉예정 드라마 속 세포들 여기서 제작함 3-2. <퇴마록> 공개예정 이 퇴마록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는 이우혁 작가가 직접 썼고 원작시대 202x년으로 다 바꿨다고함 현암 199X년생 승희 200X년생 준후 201X년생 4. 칵테일 미디어 <여신강림> 제작사 대표작은 투니버스 간판작인 신비아파트 시리즈 5. <낮에 뜨는 달> 참고 : 2021년 나온 낮뜨달 웹툰 공식ost 케이윌 - 시간을 거슬러 (해품달ost 리메이크) 거미 - 지금 말해볼게요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온다면 대박일듯 6세기 신라 파진찬 나으리의 검이라기엔 디자인이 잘못된 듯. 수정해서 잘 만들어주셨으면... 6. LICO 2023년 개봉예정 <연의편지 극장판> LICO는 아직 대표작이 없음 그래도 굳이 찾아보자면 네이버웹툰 유튜브 채널에 1분짜리 웹툰 홍보용 애니영상 가끔 올라오는데, LICO 설립 이후 네이버웹툰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거 7. 티빙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구미호뎐> 드라마 구미호뎐을 기반으로 한 성인 타깃 오리지널 애니 2021년부터 제작 8. 스튜디오 애니멀 BL 애니메이션 준비중 이미 웹툰 <놓지마정신줄>,<기기괴괴>, <웰컴투정글스쿨>,<어느날잠에서깨어보니베이글녀가되어있었습니다> 애니화 경험이 있음 고스트메신저는....ㅜㅜ 9. 레드독 컬처 하우스 몇 년 전부터 말 나왔으나 아무 소식이 없는 <이계검왕생존기> 정작 제작사는 꾸준하고 왕성히 활동중이길래 혹시나해서 넣어봄 레드독 컬쳐하우스 근황 : 라프텔 <그 여름> 단독 제작 완료 주로 단독제작보다는 다른 제작사 애니 제작에 공동참여 중 (배틀 마블리언즈, 더 위쳐, 천관사복 등등) 10. 스튜디오 미르 <외모지상주의> 11월 넷플리스에서 공개 예정 스튜디오 미르는 2020년에 넷플릭스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장기계약했고, <도타 : 용의 피> <더 위쳐 : 늑대의 악몽>을 총괄제작한 곳 11. 엑스톰 스튜디오 <청춘블라썸>, <더 복서> 12. 스튜디오 뿌리 오리지널 애니 제작 중 스튜디오 뿌리는 넥슨 홍보용 단편 애니를 주로 제작한 곳 아래 움짤들은 이 제작사의 이전 작업물들 13. 스튜디오 더블유바바 <달빛조각사> 극장판 애니 제작 확정 제작사 더블유바바의 간판작은 카봇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친구 카봇을 여기서 만들었습니다 애니화 성공시 굿즈 퀄리티 장난아닐듯 14. 봉준호 감독 <심해어> 이미 작업 시작함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작업 중 풀 CG애니메이션 심해생물과 인간들이 얽혀있는 드라마 봉준호 + 애니메이션 + 대자본 = ? 거장이 만드는 본격적으로 투자받은 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떤 모습일까 엄청 기대됨 이 외에도 로맨스판타지물 및 여러 장르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 중이라고 하네요 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 <나혼자만 레벨업>은 일본 제작사를 통해 제작 나혼렙은 우리나라 제작사가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A-1에 맡겨서 애니화 확정 (제작사 대표작 소드아트온라인, 음악감독 대표작 진격의거인) 2023년에 나온다고 함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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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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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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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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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노래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2 (Silver Age)

밤비를 마지막으로 소위 디즈니 '전쟁기(1943~1949)'라고 불리는 시간동안  미국의 세계 2차대전 참전과 전후 혼란으로 인해 디즈니 스튜디오도 예산 부족, 적은 애니메이터들로 연명해야하는 상황이었어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는 단편만 제작되었고, 장편 애니메이션은 자취를 감추었음 전쟁기가 끝나고 디즈니 Silver Age(이걸 뭐라고 번역해야하지..? 은기..?)라 불리는 시기가 도래해 이 편에서는 이 실버 에이지의 작품들을 다뤄볼게 1.신데렐라 (1950) 디즈니 황금기의 작품들은 모두 전설로 남았지만 사실 백설공주를 제외하고는 대단하게 흥행하지 못했지 (물론 음악들은 히트를 쳤습니다) 이런 상황에 애니메이터들의 파업, 세계 2차 대전 등이 겹치며 디즈니 스튜디오는 휘청휘청하게 되는데... 수렁에 빠진 디즈니를 건져올린 작품이 바로 신데렐라 되시겠습니다 실리 심포니의 음악들, 그리고 백설공주나 피노키오 노래 모두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사실 월트 디즈니는 노래 자체로 돈을 벌려고 했다기보다는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위해 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였어 그런데 사운드트랙 앨범들이 대성공을 거두고, 노래 자체로도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러면서 애니메이션의 브금을 만들어오던 작곡가가 아니라 음반 시장에서 상업적인 노래를 만들던 작곡가들을 찾으려고 노력해 그러던 어느날 <Chi-baba Chi-baba>라는 노래를 듣고 딱 꽂히게 되고 그 노래를 작곡한 세 명의 작곡가를 찾아내지 https://youtu.be/GW_yFDZk3is 이게 그 치바바치바바라는 노래야. 중간쯤부터 노래 분위기가 확 바껴. 암튼 그렇게 맥 데이빗, 제리 리빙스턴, 그리고 알 호프먼 총 세 명의 작곡가가  신데렐라의 사운드 트랙을 제작하기 시작했어. 그동안 디즈니 스튜디오 소속의 작곡가들이랑만 작업하던 디즈니가 처음으로 외부인력을 고용한 사례야 참고로 이들은 틴팬앨리 출신의 작곡가들이었어 틴팬앨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뉴욕 다운타운에서 활약했던 음악가들을 총칭하는 말이야 대중음악을 주로 다루던 사람들인데 디즈니의 노래에 대한 관점이 조금 바뀌었음을 보여주지 그냥 애니메이션에 잘 어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대중에게 어필하는 노래를 만들겠다는 그런 굳은 의지ㅎㅎ 노래가 돈이 된다는 걸 절감했나봄... 역시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 성공하나봐 그리고 덤보 음악작업에 참여했던 올리버 월레스와 폴 스미스, 조셉 듀빈이 스코어를 만들었는데 (스코어는 가사 없는 브금들을 말해. 예를 들면 신데렐라에서 고양이가 쥐를 쫓을 때 나오는 음악같이! 이 스코어를 시상하는 오스카상이 음악상이고, 특정 가사가 있는 곡을 시상하는게 주제가상이라고 보면 돼) 이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었지 신데렐라의 스코어는 신데렐라의 그림이 다 그려진 다음에 제작을 시작했다고 해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스코어는 싱크를 맞추기 위해 화면과 동시에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캐릭터들의 동작과 음악을 자연스럽게 일치시키기 위해서였지  참고로 애니메이션 등장인물들의 모션과 음악이 딱딱 맞아 들어가는 것을 '미키마우싱'이라고 하는데 디즈니의 작품들에서 파생된 용어야 영상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거 같아서 가져왔어 (디즈니 작품은 아니지만 미키마우싱의 대표적 예시로 꼽히는 톰앤제리) https://youtu.be/wxdwhzIEj_o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동작과 음향의 완벽한 싱크를 위해 음악과 영상 제작을 동시진행했던 작품들과 달리  이미 작품이 다 그려져있는 상태로 음악들을 (물론 가사 없는 스코어들만) 만들었다는 거지 영상을 미리 찍고 나중에 음향을 넣는 실사영화의 방식을 사용한건데 미키마우싱을 매우 중시했던 디즈니의 기존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어 신데렐라의 사운드트랙은 오스카상 주제가상(비비디 바비디 부), 음악상 부문에 모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수상은 실패! 1)신데렐라 Main Title 이건 오프닝송인데 신데렐라~~~이부분이 너무 좋아서..걍 개취로 올림 https://youtu.be/VikV6yvdyIg 2)A Dream Is a Wish Your Heart Makes https://youtu.be/1i8XVQ2pswg 신데렐라를 대표하는 두 노래 중 하나. 신데렐라 전반에 깔리는 테마곡이야 디즈니에 고용된 세 명의 작곡가가 가장 처음으로 만든 곡이라고 해 https://youtu.be/FuyxrYWl23g 이건 나중에 쥐들이랑 옷 만들면 서 나오는 리프라이즈 버전인데 존나 너무 귀엽잖아요.... 피노키오의 When You Wish Upon a Star가 꿈, 마법, 소망을 노래하는데 이 노래도 마찬가지야 'Dreams come true'를 외치는 디즈니사의 가치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가 피노키오의 노래와 이 노래가 아닐까싶어 그래서인지 세계 각국 디즈니랜드 퍼레이드나 캐슬쇼의 오프닝이나 엔딩곡으로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있어 이 노래는 Ilene Woods라는 분이 불렀는데, 작곡가들의 부탁으로 아일린이 데모 테이프를 녹음했고,  이를 들은 월트 디즈니가 이틀 후에 아일린에게 신데렐라역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했다고 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아일린에게는 3살짜리 딸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함께 보다가 이 노래가 나올 때면 '우리 엄마 노래예요!!'를 외치며 뛰어다녔대ㅋㅋㅋ 그럼 앞사람이 "어머~ 엄마를 신데렐라고 생각하네. 귀여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넼ㅋㅋㅋㅋ 3)Sing, Sweet Nightingale https://youtu.be/-F5qgEBHAVM 짧게 지나가는 노래긴 하지만... 신데렐라가 부르는 건 27초부터 보면 돼 뒤로 가면서 노래가 화음으로 쌓이잖아? 이 화음은 각각 다른 사람이 부른게 아니라 모두 아일린이 각기 다른 버전으로 여러번 부르고 그것을 화음으로 쌓은 거라고 해 자기 목소리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보컬 멀티 트랙 방식(over dubbing technique)을 사용한거래 디즈니에서 이 방식을 처음 사용했다는 글을 봤는데 찾아보니 그건 아니고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Les Paul이라는 사람이 이 오버 더빙이라는 방식을 개발했고 그게 막 주류로 편입되던 타이밍에 월트 디즈니가 상용화의 스타트를 끊은 거지 (보컬이 아닌 일반 멀티 트랙 레코딩 방식 자체도 디즈니 판타지아를 통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여러 글을 찾아본 결과 사실이 아닌 걸로 보여) 이 방식을 사용하게 된 일화가 참 재미있는데, 아일린이 이 노래를 녹음할 당시 월트 디즈니가 듣고 있었다고 해 아일린이 노래를 마쳤는데 월트가 약 5분 정도를 말없이 앉아있어서 아일린은 속으로 '아 망했구나...'라고 생각했대 그러다가 갑자기 아일린에게 "당신 목소리에 화음을 쌓아줄 수 있겠어요?" 이렇게 물어봤다는 거야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그 위에 화음을 쌓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일린은 매우 당황했었대  월트가 하는 말이,  "당신이 노래하는 걸 듣고 있으면 그 장면이 눈 앞에 그려져요 신데렐라가 바닥을 닦으며 노래를 부르는데, 비눗방울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신데렐라의 이미지가 비눗방울 안에 나타나죠 비눗방울 안의 또다른 신데렐라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노래는 2중주가 되고, 또다른 비눗방울이 떠오르며 3중주, 4중주, 그리고 합창이 되는 거예요" 이런 월트의 아이디어에 맞춰 아일린은 녹음을 마쳤고, 애니메이터들은 이에 맞춰 그림을 그려냈는데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되었지 나중에 완성된 장면을 보고 월트가 아일린에게 "앤드류 시스터즈(당시 미국 걸그룹)였다면 몇 배의 페이를 줬어야 할 일을 당신 한 명분만 줄 수 있었군요!"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는 일화가...;; 4)The Work Song https://youtu.be/ZOe6Nsf-KGA 후 존나 씐나는 디즈니 노동요 뒷부분은 A Dream Is a Wish Your Heart Makes임! 참고로 주황 옷 쥐(자크)랑 노랑 옷 쥐(거스)는 Jimmy MacDonald라는 분이 더빙을 했어 지미는 1947년부터 1977년까지 미키마우스의 목소리를 맡았던 사람이야!! (지미가 미키 더빙을 하기 전까지는 월트 디즈니가 직접 미키 마우스 더빙을 했었어) 그 외에도 디즈니 단편 시리즈인 칩 앤 데일의 칩, 앨리스의 겨울잠 쥐, 아더왕의 검의 늑대 등 다양한 역할의 목소리를 담당했어 지미 맥도날드는 디즈니 음향부서 팀장이기도 했는데 덤보의 서커스단 기차 엔진 소리, 위니 더 푸의 벌소리, 피터팬 악어 속 시계의 틱톡소리,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용 소리까지!! 증맬로 능력자가 아닐 수 없다 5)Bibbidi-Bobbidi-Boo https://youtu.be/iXJvxEHSv5E 나왔다 전설의 레전드 비비디 바비디 부의 가사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파트가 대부분이라고 혀 비비디 바비디를 부른 요정 대모의 역의 배우는 Verna Felton이야 디즈니에서 수많은 배역을 담당했는데 그 중 일부를 얘기해보자면 덤보에서 덤보의 엄마, 앨리스에서 하트 여왕,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요정 플로라와 왕비, 정글북의 코끼리 위니프레드가 있어 이 외에도 다양한데 디즈니에서 이 분을 아주 알차게 써먹었다고 볼 수 있지ㅎㅎ 디즈니월드나 디즈니랜드에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디즈니 테마파크에는 '비비디 바비디 부티크'가 있는데 이 곳에 가면 아이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즈니 공주 스타일로 꾸며줘 풀패키지로 꾸미고 사진까지 찍으면 정말 몇십만원 돈 하더라고..! 그치만 디즈니 덕후 아이들과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 돈이 아깝겠어..?! 내가 디즈니월드에 갔을 때는 기념품샵 직원이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치며 반짝이 가루를 뿌려줬었는데 정말 여행기간 내내 내 가방에서 반짝이가 묻어 나와서 고생했었어^.^ 껄껄껄 암튼 그만큼 디즈니에서의 변신=비비디 바비디 부로 통한다는 거 애니메이션 외의 비비디 바비디 부의 가장 유명한 버전은 페리 코모와 폰타네 시스터즈가 부른 버전이라고 하는데 무려 빌보드 차트 14위까지 올라갔었대 페리 코모의 영상과 내가 젤 좋아하는 루이 암스트롱 버전의 영상 두개를 첨부할게 https://youtu.be/1TOHMWAvMbg https://youtu.be/iS302UaBzXA 6)So This Is Love https://youtu.be/lSsx0PC5yrk 원래 신데렐라에서 여섯곡이나 티엠아이를 털 작정은 아니었는데.. 노래가 다 좋다보니 점점 분량이 늘어나네ㅠㅠ 이 노래는 정말 신데렐라 역을 맡은 아일린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넣었어ㅠㅠ 그리고 디즈니 역사상 첫 왕자와 공주의 듀엣송이라고 해 원래 이 부분은 "Dancing on a Cloud"라는 제목의 노래와 함께  사랑에 푹 빠진 신데렐라와 프린스 챠밍이 구름 위를 춤추는 장면으로 하려고 했대 하지만 조금 더 리얼함을 추구하기 위해 삭제되었고 (호박이 마차되는 영화에서 뭔 리얼함을 따졌는지) 훗날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이 컨셉을 사용하게 돼 (마지막 장면에서 숲속의 공주와 왕자가 구름 위에서 춤을 춤) 2.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51) 디즈니가 어릴 때 앨리스 책을 읽고 오랫동안 영화화의 꿈을 품고 있다가 결국 51년에 앨리스를 개봉하게 되는데 사실상 흥행에는 실패했어 하지만 사운드트랙은 좋은 평가를 받아서 오스카 음악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어.  아쉽게도 수상은 실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은 루이스 캐럴이라는 사람이 썼는데, 엄청난 상상력, 기묘함, 말장난 등등을 소설에서 보여주지 이 소설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많은 유능한 작곡가들을 썼고(한두명이 아님ㅠ), 앨리스를 위해 작곡된 곡만 30개가 넘어가... 그 중 대부분이 사운드트랙 앨범에 실렸고, 어떤 디즈니 영화보다도 사운드 트랙 수가 많다고 하네 백설공주, 밤비, 덤보의 음악을 작곡했던 프랭크 처칠이 처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맡았는데 결국 완성본에 프랭크의 노래는 하나도 쓰이지 않았고,  다만 그 중 한 노래를 재활용해서 피터팬의 "Never Smile at a Crocodile"이라는 노래로 써먹었다는 얘기가 있어. 디즈니 재활용 갑 bb (Never Smile at a Crocodile이 애초부터 피터팬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음.  뭐가 맞는 건지는 확실히 몰겠어) 그 후 앨리스 작업이 엎어졌다가 다시 시작됐을 때 신데렐라 담당 작곡가들이었던 틴 팬 앨리 출신 삼총사도 작업에 참여하지.  이 세 명의 곡 중 앨리스에 들어간 건 단 한 곡(Unbirthday song)뿐이긴 해. 또 다른 작곡가였던 Sammy Fain의 노래 중에도 앨리스에 들어가지 못하고 피터팬의 노래로 재활용된 곡이 있는데 그게 피터팬 타이틀곡 'The Second Star to the Right"이야. 이 노래에 대한 얘기는 피터팬 파트에서 다시 할게 1)In a World of My Own https://youtu.be/UD8hATR4B8s 앨리스 사운드트랙은 워낙 곡 수가 많아서 뭘 고를지 정말 고민했어... 곡 수는 많은데 흥행에 실패해서인지 tmi는 별로 없고ㅠㅠ 또르륵 노래만 들으려면 1분 45초쯤부터 들으면 돼 이 노래는 덤보, 신데렐라 음악 작업에 참여했던 올리버 월레스가 만들었어 (사진은 디즈니와 올리버야) 이 올리버라는 사람도 대단한게 피노키오부터 시작해서 덤보, 밤비, 앨리스, 피터팬, 그리고 레이디와 트램프까지 모든 디즈니 주요작품의 스코어 작업에 참여했어 주제가들도 여럿 만들었지 앨리스 더빙은 Kathryn Beaumont라는 사람이 맡았어 Kathryn은 피터팬의 웬디 더빙을 하기도 했지!!!! 2005년까지도 비디오게임이나 티비시리즈에서 앨리스, 웬디가 나올 때면 목소리 더빙을 맡아서 하셨다고 하는데 정말 대단..! 디즈니가 애니메이터들을 돕기 위해  애니메이터들 앞에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장면 속의 동작을 실제로 구현해보게끔 했고 그걸 레퍼런스 삼아서 그림을 그렸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말야! 그런데 실제 더빙 배우들을 투입해서 라이브액션을 시킨 경우도 많았다고 해 앨리스도 마찬가지였어 특히 피터팬 웬디역을 할 때는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도 나는 모습을 구현해야했었대 ㅎㄷㄷㄷㄷ 웬디 나는 부분 사진은 못찾아서 앨리스 사진만 가져왔어ㅠㅠ 2) All in the Golden Afternoon https://youtu.be/jbpBdmXiceM 내 앨리스 최애 곡. 같이 들으려고 가져와쒀 곡 자체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더라고..또르르.... 3) Unbirthday Song https://youtu.be/4dZH9a67SZE 신데렐라 음악을 작곡했던 틴 팬 앨리 출신 작곡가 3인방이 만든 노래 마땅한 영상을 못 찾아서 화질 구린 걸로라도 가져와봤어 나중에 앨리스 재판장에서 리프라이즈 돼서 한 번 더 나와 노래가 졸라...또라이같아ㅋㅋㅋㅋㅋㅋㅋ 매드 해터, 마치 헤어, 그리고 겨울잠쥐 셋이서 매드 티파티를 벌이는 장면인데  이 매드 티파티에서 따와서 디즈니 테마파크들 대부분에 있는 어트랙션을 만들었지 어트랙션 이름도 매드 티파티야ㅋㅋㅋㅋㅋ 롯데월드 회전바구니랑 비슷혀 이 장면도 역시나 배우들을 통해 액션 레퍼런스를 만들었는데 영상이 있어서 가져왔어 매드 해터는 Ed Wynn이라는 배우 겸 코미디언이 맡으셨는데 이 분 연기 존나 잘해..찐이야 이사람 훗날 디즈니 메리포핀스에 출연하시기도 하는데 암튼 이 영상은 28초부터 보면 돼  https://youtu.be/ROqlhMEWA70 4)Painting the Roses Red https://youtu.be/ANLh2wo5g2I 개씐나서 가져온 노래 가사는 좀 살벌하긴 한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하트 여왕 더빙은 신데렐라 요정 대모의 더빙을 맡았던 Verna Felton이 맡았어 하트여왕과 신데렐라 요정.. 너무나 상반되는 이미지인게 신기ㅋㅋㅋ 3.피터팬 (1953) 디즈니 스튜디오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디즈니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들 9명을 'Disney's Nine Old Man'라고 하는데, 이 9명이 모두 참여한 마지막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야 1)The Second Star to the Right https://youtu.be/NmI9fVrHaf0 피터팬의 시그니쳐인 나팔 소리가 첨으로 나오는 노래! 뚠~뚜둔~~ 앨리스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던 Sammy Fain이 앨리스를 위해 만들어뒀던 노래를 앨리스에 넣지 못했고 피터팬에서 재활용하게 됐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이 노래여 2)You Can Fly! https://youtu.be/41C8Bqj9UtY 피터팬에서 젤 유명한 노래가 아닐까? 역시나 Sammy Fain이 작곡했어 이 장면을 나중에 알라딘 "A Whole New World"장면에서 레퍼런스로 썼다고도 해ㅋㅋㅋ (존나 날아댕길 때) 참고로 피터팬의 목소리를 맡은 사람은 Bobby Driscoll이라는 사람이었어 바비는 7살의 나이에 아역배우로 데뷔했고 월트 디즈니의 눈에 띄어서 디즈니사와 계약을 하게 돼 디즈니가 처음으로 소속 배우 개념으로 계약한 배우가 바로 이 바비 드리스콜이고, 이 때 바비 드리스콜과 함께 또다른 아역배우가 계약을 하는데 Luana Patten이었어 이 둘이 디즈니의 실사영화와 티비쇼들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게 되고,  '월트 디즈니의 'Sweetheart Team''이라는 애칭까지 얻게 되지. 월트가 매우 아꼈나봄;; 안타깝게도 바비는 피터팬을 마지막으로 날개가 꺾여 바비를 젊음, 아이같음의 상징으로 여기며 예뻐하던 월트 디즈니가 피터팬 완성 이후의 회의에서 "바비는 이제 매력 있는 주인공 역할보다 못된 양아치 역이 더 잘어울려"라는 말을 했다고 해 결국 피터팬이 개봉하기도 전에 연장이 예정되어있던 디즈니와의 계약이 취소되어버려ㅠㅠ 거기에 사춘기가 시작되어서 여드름이 매우 심하게 났었는데 이도 계약 종료의 원인이었다고... 월트 디즈니 할많하않.. 3)Following the Leader https://youtu.be/5xmNaZqxNpI 형아들 열심히 따라가는 마이클이 너무 귀여워서 넣었슴다 끝부분에 "We're off to fight the Injuns, the Injuns, the Injuns,,,"(인디언이랑 싸우러 간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Injuns가 미국에서 인디언들을 비하하는 속어래 후에 디즈니에서 디즈니 사운드트랙들을 모아 비디오로 발매할 때는 이 부분의 가사를 "We won't be home till morning, till morning, till morning,,,"(아침까지 집에 안 갈 거야)으로 바꿨다고 해 쓰애끼덜;; 4)What Makes the Red Man Red https://youtu.be/f7yE8TKUB_M 이건 정말 인종차별 끝판왕급 노래야 사실 안 넣으려고 하다가 이 시기 디즈니와 대중들이 이렇게 생각이 없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넣었어 ㅎㅎ.. 소위 말하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으로 묘사한 부분인데 피터팬 원작 소설보다도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더 강조되었다고 해 ㅅㅂ 현재는 이러한 묘사가 인종에 대한 시각을 왜곡하고 고정관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정말 엄청나게 까이는 노래야 티비에서 재방영 될 때는 이 장면이 종종 삭제되었다고 하고, 2002년에 개봉한 피터팬 후속편 <리턴 투 네버랜드>에서는 아예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캐릭터를 빼버렸어 피터팬을 마지막으로 디즈니가 인종차별의 역사를 끝냈으면 참 좋으련만 그들의 이런 무식한 행동은 계속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4.Lady and the Tramp (1955) 흥행에는 나름 성공했으나 이상하게 회자되는 노래가 별로 없고 그래서인지 tmi 가뭄이라 나를 슬프게 만든 영화 메이킹도 못 찾겠더라... 레이디와 트램프 이전까지의 디즈니는 항상 RKO 라디오 픽처스라는 배급사를 통해 영화 배급을 해왔는데 이 작품을 기점으로 Buena Vista Distribution이라는 회사를 세워서 자체 배급을 시작하게 돼 디즈니 황금기때부터 피노키오, 덤보, 밤비, 신데렐라, 앨리스, 피터팬까지 굵직굵직한 작품 모두에서 스코어작업에 참여해왔던 올리버 월레스가 레이디엔 트램프에도 참여했는데,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디즈니를 떠나 그 외에도 미국에서 가수, 성우로 유명했던 Peggy Lee라는 사람도 작곡에 참여하였는데 페기는 레이디와 트램프에서 달링 부인(레이디 주인), 쌍둥이 샴고양이 등 여러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하기도 했어 훗날 레이디 트램프의 가정용 비디오가 제작될 때 본인의 목소리에 대한 개런티가 전혀 지불되지 않았다고 디즈니로부터 소송을 걸기도 했는데 승소했고, 디즈니로부터 무려 230만 달러를 받게 돼. 참고로 실사버전 영화가 개봉했는데... 소리소문 없이 지나갔다는 슬픈 소식.... 1)Baby's First Morning / What Is a Baby / La La Lu https://youtu.be/yxIVuOJfK_c 레이디가 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던 어느날, 달링 부인이 애기를 낳고 집으로 데려와 what is a baby는 사람들이 다 애기만 보고 레이디한테 관심이 없어지니까  "대체 아기란게 뭔데 저러지?"하면서 레이디가 부르는 거고 뒤에 라라루는 달링 부인이 애기한테 불러주는 노래! 레이디랑 달링 부인 목소리가 넘나 고와서 가져왔지요 레이디의 더빙을 맡은 배우는 Barbara Luddy인데 레이디 이외에도 몇몇 디즈니 작품에 더 출연해 특히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요정 삼총사 중 한 명인 메리 웨더, 그리고 위니 더 푸에서 캥거루 모자의 엄마 캉가 역이 가장 유명해 디즈니는 한 번 같이 일하면 뽕을 뽑는 경우가 많더라고 2)The Siamese Cat Song https://youtu.be/rlQYqQs0R3w 바로 위에서 쏘스윗한 목소리로 애기한테 노래를 불러주던 달링 부인의 더빙을 맡았던 페기 리가 이 노래도 불렀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얘네가 샴 고양이라 각각 이름이 시+암ㅋㅋㅋㅋㅋㅋ인데(개단순) 시와 암의 목소리를 모두 페기가 녹음함;;; 대단쓰 3)Bella Notte https://youtu.be/fbzEOQLOAWw 레이디와 트램프에서 노래 하나를 꼽으라면 뭐다? 가장 유명한 벨라 노떼 되시겠습니다. 레이디와 트램프의 시그니처송이라고도 할 수 있지 참고로 벨라노떼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밤이라는 뜻이래 요 노래는 작사진중 한 명이었던 소니 버크라는 사람이 만들었어 전해지는 썰로는 월트 디즈니가 저 스파게티 먹는 장면을 별로 안 내켜해서 빼려고 했었다는데 뺐으면 어쩔 뻔했어?ㅋㅋ  최고 명장면인데 말야 워낙 유명하다보니 다양한 매체에서 패러디도 많이 되었지 실사버전 트레일러에서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더라구 명장면도 마지막에 집어넣어주는 센스..! 실사영화 예고편 영상도 살포시 업로드해봤습니다 (광고 아님..)] https://youtu.be/A2ZDDU34gYw 미드 글리에서 리메이크한 버전도 굉장히 유명한데 노래 부른 사람 중 한 명이 아동포르노 소지한 거 걸리고 자살한 새끼라...  찜찜해서 올릴까 말까 하다가 걍 패스합니다 허허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세용 5)He's a Tramp https://youtu.be/KhJcyrkfjQg  이 노래도 페기 리가 불렀음 한 애니메이션 안에서 다른 목소리로 여러 노래를 불러버리는 개능력자;; 소송해서 몇십억 받을 만 하지 않나요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올림다 출처 넘잼따,, 담편도 가져올게여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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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를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와 "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3화 - geudaedeul eotteohge sal geos-inga 3hwa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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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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