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 시고 설교 - siheom-e deulge haji maob sigo seolgyo

마태복음 6 장

13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요약 ----

      주기도의 마지막 여섯 번째 간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입니다. 시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범죄 하도록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에서가 아니라, 우리로 범죄 하게 하는 악한 마귀의 온갖 계략에서 구하여 달라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우리의 유익을 위해 고난으로 연단 받게 하는 것은 다 필요한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성숙시키기 위한 시련(연단)이요 훈련입니다.

      그러나 시험이란 말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범죄 하도록 유혹하고 죄악에 빠지게 하는 유혹(temptation)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유혹으로 시험하여 죄악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악한 자 곧 사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지만 마귀처럼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시험은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창 22:1; 히 11:17).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유혹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전함과 견고함을 드러내어 믿음의 참된 본질이 어떤 것임을 그의 믿음의 후손들인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는 간구는 하나님께 ‘우리를 시험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의 유혹에 걸려들어 마귀가 파놓은 함정에(올무와 그물에) 빠지지 않게 해주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유혹하여 악에 빠지게 하는 마귀의 시험을 우리의 지능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걸려들어 악에 빠지게 되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에서(또는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잘 나가던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에 빠져 잘못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려 죄악에 빠져 비참하게 되는 사례들을 우리는 자주 듣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과 자기 욕심에 끌려 받는 시험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과 시험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순종함으로 참고 견디는 인내로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우리는 시련을 위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으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고 구비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유혹과 육체의 욕심이 주는 미혹의 시험을 이기는 길은 속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으로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게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과는 비참 뿐 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5-17).

      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과 육체의 욕심에 끌려 죄를 짓고 나가면 영육 간에 망하고 비참하게 되는 것 뿐 입니다.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7문은 “우리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만으로는 너무나 연약하여 우리는 한 순간도 설 수 없사오며,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신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나이다. 그러하므로 주의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친히 붙드시고 강하게 해주셔서,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우리의 원수에 대해 항상 굳세게 대항하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자신이 어리석고 연약한 줄 알고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귀와 세상과 육신에 대항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은 어디에서 무엇을 통하여 오는가

      사탄은 수많은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게 하는 유혹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의 시험에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뿐 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육신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을 유혹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족관계, 교우관계, 친구관계 등)를 시험에 들게 하는 유혹의 기회로 사용합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것은 마귀와 주위 사람들 뿐 아니고, 시험은 나 자신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 체면과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면 마귀는 그것을 통해 유혹하여 시험에 들게 합니다. 이런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마 16:23 하).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있을 주님의 인정과 칭찬과 상급만 바라고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더욱 헌신하는 삶을 살 때, 시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유익들

      시험과 관련하여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시련(trial)이라고 말합니다. 시련, 연단, 그리고 훈련을 위한 시험은 그것이 어떠한 고난일지라도 유익을 위한 필요한 시험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약 1:2). 이 시험은 우리를 순결하게 하기 위한 시련이요 연단시키는 훈련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들(trials)을 위한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주님의 좋은 군사로 훈련을 받게 하는 유익이 있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은 다 시련을 통해 형성된 인물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시련보다 더 큰 유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의 삶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시련들을 통하여 더욱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하시고 더욱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시련보다 더 큰 유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시련들을 통해 세상의 공허함과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하여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그분만을 기쁘시게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통 중에서도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죄를 그치게 되고,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벧전 4:1,2,19).

      우리는 이 여섯 번째 간구(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나로 하여금 어떤 유혹에도 노출되지 않게 하소서’ 라는 뜻도 아니고, ‘나로 하여금 어떤 고통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라는 기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여섯 번째 간구의 뜻은 ‘우리에게 어떤 유혹과 위협과 고난의 시련이 닥칠는지 알지 못하지만, 어떤 시험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 시험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모든 시험과 시련들을 통하여 많은 유익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소서’ 라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