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 카라 왕자공주 - oso kala wangjagongju

커플 아님. 성애 없음. 송백이가 종남에서 쫌 미움 받을 때 이야기

종서한은 사제들이 몰래 먹던 당과를 압수하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송백이 크게 다쳐 자리보전했단다. 정말이지 이상한 이야기였다. 이송백은 남이 뭐라고 하건 말건 우직하게 제 갈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 이미 사장된 고루한 검법을 몇 백번, 몇 만 번. 휘두르고 또 휘두르고. 보는 사람이 지겹고 답답하여 인상을 찌푸릴 때까지. 그런 우직하고 멍청한 짓...

오소카라 전력 8월 7일 주제: 너의 목소리

* 세월은 무상하다. 퍼올린 모래와 같이 손에서 흘러내리는 것이고, 손아귀에 움켜쥔 물과 같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나를 스쳐지나가지만 감각으론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너의 목소리와 닮았다. 너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그것은 애정일지도 모르고, 우애일지도 모르며, 아마도 사랑, 그것일지도 모...

“애인을 사귀어도 좋다. 아니, 오히려 적극 권장하고싶군.”

툭. 오소마츠가 입으로 옮기던 스테이크 조각이 접시 위로 떨어졌다. 카라마츠는 미디움으로 익은 고기조각을 쳐다보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새빨간 육질과 대비되는 푸른 얼굴이 보였다.

‘너무 기쁘면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도 하는군.’

카라마츠는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비즈니스 커플.. 아니, 쇼윈도 부부? 뭐가 됐든 나라의 이익을 위해 정략 결혼은 해도 너는 네 인생을 나는 내 인생을 살자는 거지. OK?”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공략법 바꿨어? 에이, 이 카리스마 레전드님께는 그런 거 안 통한다니까.”

오소마츠가 너스레를 떨며 손을 내저었다. 자신의 표정이 노골적이었던 걸 의식했는지 다시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짜증스럽게 반박했다.

“진심이다. 넌 여자가 좋지 않은가. 네가 인간쓰레기라도 왕자씩이나 되니 애인은 구할 수 있겠지.”

니트로 빈둥거리는 오소마츠에게는 우주처럼 먼 얘기겠지만, 이곳의 오소마츠는 왕자니까. 나라간 동맹을 위해 이 장난같은 결혼을 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없는데 평생을 이러고 사는건 고문이지 않은가.
그러나 오소마츠는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너 진심이지? 후회하지 마.”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카라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이해할 수 없어 대답했다.

“새삼스레 쓰레기 소리 들었다고 삐진 건가? 어쨌든 네겐 좋은 소식이잖아. 그간 귀찮게 굴었던 건 사과하겠다. 이젠 그럴 일 없을 거야. 약속하지.”

그 말에도 오소마츠의 표정은 더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카라마츠의 의문은 더더욱 늘어만 갔고. 니트 오소마츠는 단순해서 쉽게 파악이 가능했는데.

‘이곳의 오소마츠는 좀더 델리케이트한 모양이군.’

카라마츠는 내심 귀찮아하며 그냥 그대로 일어나 자리를 떠버렸다.

그날 이후 오소마츠는 보란듯이 여자들에게 찝쩍거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격적으로 염문을 뿌리는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카라마츠는 시큰둥했고, 어느날부터는 막내 왕자 토도마츠가 찾아와 은근히 두 사람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카라마츠형 마음도 백 번 이해해. 나 같아도 저런 남편은 싫지. 그래도 내 얼굴 봐서라도 다시 생각해봐. 오소마츠 형을 남편으로 두는 대신 나랑 가족이 되는거잖아!”

토도마츠는 드라이몬스터라고 들어도 카라마츠를 세심하게 돌봐주곤 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걱정 마라. 파혼할 생각은 없다.”

명확하게 대답해주었음에도 불안감이 풀리지 않았는지 토도마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는지 나한테만 살짝 말해주면 안돼? 오소마츠 형이 뭔가 잘못한 거지?”

카라마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공주가 여기 온 순간부터 쭉 잘못을 하고 있었다만…….’

곧이곧대로 전했다가 동생을 빼닳은 이 왕자 동생을 더 곤란하게 만들고싶지는 않았다.
카라마츠는 치비타의 납치 연극에 휘말려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곳이었다. 처음엔 자신을 놀리는 콩트라도 하는줄 알고 난리법석을 떨었었지.
그러나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이곳의 삶도 진짜라는 걸 알게해줬다. 이곳에서 형제들은 5형제였고 카라마츠만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공주 카라마츠는 왕자 오소마츠를 병적으로 좋아했고, 왕자 오소마츠는 공주 카라마츠를 질색했고. 카라마츠는 짜게 식은 기분으로 그 기억들을 받아들였다.

공주 카라마츠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아는 것은 그저 카라마츠 본인이 죽었다는 것과 앞으로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한다는 것뿐.
노을을 향해 나아가던 형제들과 5형제인 이곳의 형제들이 겹쳐보이며 카라마츠는 상당히 의욕을 상실했다.
형제들이 싫어지지는 않았지만, 더이상 매달리고싶지도 않았다.
니트였던 카라마츠가 니트인 오소마츠에게 품었던 감정도 차게 식은 듯했다. 실제로 이곳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사랑한 오소마츠가 아니기도 했고.

“……그런 거 아니다. 그냥 나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싶어졌을 뿐이야.”

카라마츠의 대답에 토도마츠는 입을 합 다물었다.

‘만약에 그 사람이 가족이 되어달라고 하면? 그땐 우리를 버리고 떠날 거야?’

대답을 듣는 게 무서워서 차마 내지 못하는 질문만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형제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당사자들만 빼고.
카라마츠는 형제들에게 또 다른 맏형이었다. 그저 형수님정도의 거리감이 아니라 진짜 가족.
그러니 작금의 상황에 더 속이 탔다. 제 마음을 눈치채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바보 장남과 정말로 마음이 떠나가는 게 보이는 카라마츠의 대비가 명확해서.
게다가 늘 해맑았던 카라마츠가 요즘엔 잘 웃지조차 않아 마음의 병이 생긴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도는 지경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 이어가던 분위기가 결국 크게 터져버렸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사이의 냉전 소식을 들은 타국에서 카라마츠에게 혼담을 건넨 것이었다.

“거절할거지?”

토도마츠가 불안한 눈빛을 보내며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그리고 쥬시마츠도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심기불편한 얼굴로 식사중인 오소마츠를 보고는 말했다.

“오소마츠가 원치 않는다면 그럴 생각이다.”

카라마츠의 나라에선 은근히 새로 약혼하는 것을 바라는 눈치였지만, 카라마츠는 가급적이면 약속을 지키고싶었다. 그러나 오소마츠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왜 내 핑계를 대?”

오소마츠가 날선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오소마츠형!”

토도마츠가 다급히 외쳤으나 입 밖으로 나간 말은 멈추지 않고 나왔다.

“파혼하고싶은거지? 그런데 내가 거절하지 않으면 명분이 안 서니까 내 핑계를 대는 거잖아.”

오소마츠의 눈에 하얗게 질린 동생들의 얼굴이 보였다. 차분히 가라앉은 카라마츠의 얼굴도. 위기감이 차올라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입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래. 파혼해. 가버리라고. 널 데려가주겠다니, 좋은 기회잖아.”

그렇게 내뱉고 가장 절망한 사람은 오소마츠였다. 심음 소리가 시끄럽게 귓가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카라마츠의 조용한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다.”

모두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세는 듯했다.

그날 늦은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처소 앞에서 서성였다. 동생들의 비난보다도 카라마츠가 없어질 앞으로의 삶을 상상하니 두려워 참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그제야 제 마음을 인정했다. 그러자 그간 카라마츠의 애정을 멸시해왔던 자신을 실컷 때려주고싶어졌고, 유치한 자존심에 후회할 말을 뱉어버린 자신을 발로 차고 싶어졌다.

오소마츠는 침을 꿀꺽 삼키곤 용기를 내 문을 두드렸다.

“카라마츠.”

이름을 부르자 곧 문이 천천히 열렸다. 울었는지 눈가가 빨개진 카라마츠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내밀었다.
냉랭하게 굴어도 여전히 울보에 마음 약한 카라마츠의 모습에 햄스터꼬리만큼 남은 양심이 따끔따끔 아파왔다.

“점심땐 내가 미안해.”

의외의 말에 카라마츠는 눈을 깜빡였다. 오소마츠가 말을 이었다.

“심술이 나서 그랬어. 진심이 아니야. ……가지 말아줘.”

오소마츠의 귓가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그런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널 조, 좋아해. 나랑 결혼해줘. 만회할 수 있어!”

말까지 더듬으며 그래도 용기있게 마음을 부딪혀오는 오소마츠에 카라마츠는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절망은 카라마츠의 감정이었다. 반면 환희는…… 공주 카라마츠의 감정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발끝이 꺼지는 듯했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몸을 되찾은 공주 카라마츠가 왕자 오소마츠의 품에 뛰어드는 게 보였다.

‘나는 이제 죽어 없어지는 건가.’

그런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라마츠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였다.
그걸 인식한 순간 부유하던 몸에 갑자기 큰 통증이 닥쳤다. 카라마츠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신음하는데 꽉 잡힌 손에서 따듯함이 느껴졌다. 온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내심 그리워했던 빨강이 시야에 가득히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