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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역사까지, 빅뱅 이후의 일들

“약 135억년 전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이런 근본적 특징을 다루는 이야기를 우리는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물질과 에너지는 등장한 지 30만년 후에 원자라 불리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원자는 모여서 분자가 되었다. 원자, 분자 및 그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학이라고 부른다. 

약 38억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 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생물학이라 부른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 후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우주적 시간을 생각하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의 저서 <사피엔스(Sapiens)>의  첫 문장입니다. 물리학에서 화학, 그리고 생물학을 거쳐 역사에 다다르고 있지요. 135억년에서 7만년으로, 그리고 1만 2천년 전의 농업혁명과 5백년 전의 과학혁명까지, 우주적 시간의 규모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고 보니 2014년말 GE의 이모지사이언스랩에서 만들었던 그림문자극 <우주의 기원>을 소개하며 우주적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네요. 태양, 저 멀리 마젤란 성단, 우리 한 명 한 명의 인간, 그리고 시베리아와 아마존 숲의 나무들은 모두 생일이 같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수백억 년 전의 어느 날 함께 한 곳에서 벌어진 일에 기원을 두고 있지요. 우주의 대팽창이 시작된 순간에요. 그러니까 별도, 나무도, 얼굴색과 모양과 성별과 나이가 다른 사람들 하나하나도 사실은 생일이 같은, 서로의 친구이자 형제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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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모든 호모 종들의 우승자

<사피엔스>는 지금의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형제들을 물리치고/대신하여 지구의 지배자가 된 과정부터 섬뜩하게 묘사합니다. 2백만년 전부터 약 1만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들 사이를 단일한 계보가 이어지며 진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주류였지요. 가령 호모 에르가스터가 호모 에렉투스를 낳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을,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는 식으로요. 하라리는 이런 다양한 인간 종들을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로부터 지워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서도 네안데르탈인은 튼튼하며 머리가 좋고 추위에 잘 견뎌 호모 사피엔스와 오래도록 경쟁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렇지만 약 3만년 전 역사로부터 증발하고 말았지요.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이들을 멸종으로 이끌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둘은 서식지와 수렵 채집 대상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였습니다. 생존을 위한 기술과 사회성이 우수한 사피엔스에 밀려 네안데르탈인은 점점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고,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모두 죽어갔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과정 없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폭력과 대량학살을 유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죠.

언어의 발전: 정보 공유, 평판과 뒷담화, 허구의 신화

2장 ‘지식의 나무’에서부터 하라리는 본격적으로 ‘인지혁명’을 이야기합니다. 7만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세 분기점 중 첫 번째 분기점이지요. 이때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호모 종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경쟁에서의 패배 후 자연도태로 몰았건, 직접적인 인종청소에 나섰던 것이건) 바로 이 ‘언어’라는 사회적 도구이자 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무엇보다도 정보를 공유하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녹색원숭이도 동료들에게 “조심해! 사자야!”라고 외칠 수 있지만, 인간 여성은 그걸 넘어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오늘 아침 강이 굽어지는 곳 부근에서 한 무리의 들소를 쫓는 사자 한 마리를 보았어.”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그녀의 무리는 강에 접근해서 사자를 쫓아버리고 들소를 사냥할 것인지를 논의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 인간의 언어가 발달하게 된 것은 소문을 옮기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평판과 뒷담화를 위해 언어적 발달이 촉진되었다는 것이지요. 무리 중에서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누가 거짓말쟁이인지를 아는 것은 무리의 생존을 좌우할뿐더러, 이후 더 긴밀하고 복잡한 사회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언어는 허구를 말할 수 있게 되면서 더 강력해졌습니다. 전설, 신화, 신, 종교 등은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습니다. 국가와 제국의 탄생, 오늘날 경제를 좌우하는 기업의 활동,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이 허구의 신화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머릿 속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존재들. 언어는 바로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지요. “우리는 ‘원시인’들이 유령과 정령을 믿음으로써, 그리고 보름달이 뜰 때마다 불 주위에 모여 함께 춤을 춤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한다.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제도들도 정확히 그런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의 세계를 예로 들어보자. 현대의 사업가와 법률가들은 사실상 강력한 마법사들이다. 이들과 원시 샤먼 간에 주된 차이는 현대 법률가들이 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이상하다는 점뿐이다.” 우리의 현재 모습의 상당 부분이 허구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죠.

수렵채집인, 어쩌면 우리보다 행복했을…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단선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좀 더 입체적이고 풍부한 시선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직선적인 발전 모델에 대해서 한 번쯤 의심해보라는 것이고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새겨진 것은 수렵채집인으로서 보내온 수만 년의 생활에서 얻어진 감각들입니다. 현대인들의 소외, 우울감 같은 것들은 바로 수렵채집인으로서의 감각과 멀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수렵채집인들은 지금 오해하는 것과 달리 현대인들보다(그리고 당연히 예전의 농부들보다 훨씬) 일을 적게 하였으며, 영양 균형도 좋았습니다. 다양한 것을 식량으로 삼았기 때문에 몇몇 작물의 작황에 따라 파멸적인 결과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었습니다. 많은 수가 밀집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전염병 등 질병의 영향도 덜 받았지요. 수만 년 전의 삶이나 사회의 모습을 이상화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계속해서 진보해온 것으로만 보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행복의 문제와 관련해 본다면 말입니다.

행복의 역사,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진 것일까?

지난 5백년 동안의 과학과 산업혁명은 그 앞의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이상으로 인간의 삶의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사회질서는 완전히 혁파되었고 정치, 인간생활, 심리 등 모든 면에서 변화가 잇따랐지요. 하지만, 이런 변화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농업과 도시, 문자와 화폐제도, 제국과 과학, 산업을 발전시키는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역사를 연구해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성 역할, 질병, 성적 특질, 식량, 의복 등 미시사(microhistory)로 들어가면 연구주제는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납니다. 설탕, 소금, 바나나, 후추, 심지어 해삼과 대구도 어엿한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인류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멈춰서 생각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역사학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답은 고사하고 아예 질문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행복의 장기적 역사를 연구한 사람도 드물지만, 많은 학자와 보통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능력이 커져온 것만큼 행복도 늘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일반적으로 불행을 줄이고, 자신의 소망을 충족하는 일에 능력을 사용한다고 말이지요. 이 말이 맞는다면 우리는 저 오래 전의 수렵채집인들 보다, 그리고 중세의 농민들보다 행복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새로운 재능, 행태, 기술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구조의 변화, 제국의 흥망, 기술의 발견과 확산 등은 분명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이것들이 개인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있는 가장 큰 공백이지요. 

호모 사피엔스, 미래를 봉쇄당하다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유별난 동물종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그것은 500여년 전에 시작한 과학혁명, 산업혁명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이래 수 십억년 동안 자연선택의 법칙이 지배했지요. 바이러스건 공룡이건 자연 법칙에 따라서만 진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과학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지적설계(Intellectual Design)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과학자들은 유전 공학과 나노 기술, 인공지능의 도움에 힘입어 사이보그(유기체와 비유기체를 결합한 존재)를 개발하거나 완전히 비유기적인 존재를 창조해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혁명은 인류 역사를 넘어 생물학 자체와 우주의 생명 경로 자체까지 바꿀 수 있는 무서움을 갖고 있지요. 

책에서 ‘인간 강화’, ‘신이 되려는 시도’ 등으로 말하던 것과 조금 다른 맥락의 걱정도 있습니다. 하라리는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동화, 로봇, 인공지능 등 과학혁명의 결과 지금 당도해 있는 몇 가지 기술적 변화들이 초래할 사회의 모습을 걱정합니다. 

“나는 우리가 21세기에 직면하게 될 가장 주된 경제 문제가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를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점점 더 많은 인지적 영역에서 인간을 따라잡고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의식에 관한 한, 유사한 어떤 것도 개발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 보이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의식까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능만 있으면 된다. 의식은 없어도 지능이 뛰어난 자율 주행차나 의사봇이 인간 운전수와 의사보다 일을 더 잘 하면 지구상의 수백만 운전자와 의사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의 ‘쓸모’는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무용해질 수십억 명의 인간을 어떻게 할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경제 모델도 갖고 있지 않다.”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미래에의 도전

앞서 인용한 인터뷰의 가장 마지막에 하라리는 우리가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흔히 말하는,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 실수에서 배우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과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가능한 미래들을 볼 수 있도록! 

그런 점에서 여러분에게 <사피엔스>책과 더불어 하라리의 인터뷰 기사도 추천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고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가끔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 실수에서 배우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각자는 특정 규범과 가치의 체계, 특정한 경제 정치 질서에 의해 지배 받는, 특정한 세계 속으로 태어난다. 그 결과,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접한 주변의 현실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아는 세계가 역사적으로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그것들이 우리의 기술,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방식까지 조건 지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덜미를 잡혀 우리 눈은 오직 하나의 가능한 미래로만 향하게 된다. 심지어 태어나는 순간부터 과거의 손아귀에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이런 손아귀를 느슨하게 하고 우리 머리를 좀 더 자유롭게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가능한 미래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모르면 역사의 우연적인 것들을 우리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민족주의, 개인주의, 인권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가 최근에 생겨난 것들이다. 우리 DNA에는 아무런 (천부의) 권리도 새겨져 있지 않다.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런 모든 인간적인 창조물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역사가 그토록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역사를 알려는 것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