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 8명 죽이고 환호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한겨레 - gananbaeng-i 8myeong jug-igo hwanhohaneun ulineun nugu-inga hangyeole

사람사는 세상

[한겨레 박노자 칼럼] 가난뱅이 8명 죽이고 환호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를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나?

 요즘 진보언론까지 포함해서 ‘아덴만 여명’ 작전의 ‘대성공’에 들떠 있다. ‘아덴만에서의 쾌거’로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군의 위상이 강화됐다”고 기뻐하는 보수언론의 심리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진보언론들까지도 ‘해적 소탕 성공’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우리 국민들이 잘 구출되고 외국 범죄자들이 응징을 잘 받았다”는 데에 대해 긍정 일변도로 반응하는 ‘민심’에 민감한 나머지 ‘주류’와 질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셈이다.

 그러나 “외국 범죄자들이 살해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국민이 구출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순박한 민족주의적 심리를 이용해 ‘아덴만에서의 승리’에 대한 다수의 한국인들의 비이성적인 기쁨을 부추기는 텔레비전과 보수신문들은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른다. 살해당한 이들에 대한 기본적 측은지심도 저버린 이 반인륜적인 ‘국민적 환희’는 앞으로 우리에게 수많은 재앙을 가져다줄 것이다.

 같은 국내인이 극단적 궁핍을 이기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인질 범죄를 범하게 된다면 우리는 통상 그 범죄에 대한 당연한 공분과 함께 빈민을 범죄자로 만든 딱한 사정에 대한 일말의 연민을 당연히 느낀다. 그러면 보편적인 인류애의 차원에서는 비록 국내인을 상대로 범죄를 벌인 외국인이라 해도 같은 시각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소련과 중국의 후원을 받아 ‘사회주의적 성향’을 천명한 소말리아 국가는 사실상 1991년에 동구권과 함께 붕괴, 소멸됐다. 그 후로는 전략적 요충지인 소말리아는 1993~1995년간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세력들의 무장 침공부터 시작해서 계속 외세의 간섭에 시달려왔다. 최근 미국의 사주와 후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의 침략(2006~2009) 등으로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내우외환 속에서 국가재건이 계속 지지부진해 주민들의 생업은 늘 위협을 받아왔다.

 상식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해적”이라고 하는 집단들은 붕괴된 국가가 더 이상 외국 어선으로부터 지키지 못하게 된 어장들을 빼앗겨 생계 곤란에 빠진 해안지구의 어민들이다. 이들의 인질 범죄를 당연히 합리화할 생각은 없지만 외세에 시달려본 한국인들은 과연 그들의 아픔을 약간이나마 이해해줄 만한 아량마저도 없는 것인가?

 범죄사회학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범죄 근절 전략으로서는 ‘소탕’이 아닌 생계형 범죄 예방 차원의 민생대책이야말로 최적이다.

 소말리아의 경우에는, 급한 것은 인질의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도박형 ‘구출작전’이 아니고 외세 간섭의 차단과 이슬람주의 세력 등 유력 반대파와의 타협, 국가재건과 어업의 부흥일 것이다. 더군다나 ‘소탕 작전’의 과정에서 해적이 살해되는 경우에는, 이는 그 작전을 벌인 국가 소속의 선원들에 대한 차후의 복수를 의미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호재’라고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차후에 언젠가 아덴만에서 복수를 당할지도 모를 무고한 해운업 노동자들의 생명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신경을 써주기나 하는가?

 피는 피를 부를 뿐이다. 가난과 고용 불안에 시달려 위험천만한 아덴만으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국내 선원이든, 아이를 먹여주려고 호구지책으로 해적선을 타는 소말리아 어민이든 그 생명은 똑같이 귀한 것이고, 똑같이 해치면 안 되는 것이다. 2500년 전에 성인이 “승리를 기뻐하는 것은 살인을 기뻐하는 것과 같다. 승리해서 돌아오는 군을 장례식을 치르듯이 맞이하라”고 했다(<도덕경>, 31장). 이 말에 비추어 볼 때에, 어쩔 수 없이 해적이 된 가난뱅이 8명을 “성공적으로” 죽였다고 기뻐서 난리 치는 우리를 과연 계속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있어야 할 자비심이나 생명에 대한 경외, 피부색과 무관한 이웃 사랑은 우리에게 과연 남아 있는가? 대한민국 국적 소유자임이 부끄러울뿐이다.       

 2011-01-30                                   

---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