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폭포 - seong-gyungwan yusaengdeul-ui nanal pogpo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긴 줄거리 (제1권)

계집 유생

1.풍성한 속눈썹을 가진 곱상한 선비. 그는 낡긴 하였으나 깨끗한 도포를 입고 있었다. 그가 책방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마 후에 있을 '식년초시'(3년에 한 번 보는 정기시로 약 700명에 해당하는 초시를 뽑았다.)에 대해 말한다. 이 곱상한 선비는 그동안 사수(글씨를 베껴 쓰는 사람) 일을 해오다가 거벽(불법으로 과거 시문을 지어주는 사람)을 하려던 과유(선비)가 고열로 과거장에 못나오는 바람에 대신 거벽을 하여 의뢰자를 합격시켰던 것이다. 곱상한 선비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수입이 쏠쏠한 이 일을 원했지만 주인이 요번에는 힘들겠다고 하면서 왜 그런 실력을 가지고 과거를 보지 않냐고 의아해 한다. 그러자 그 곱상한 선비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면 세상 사람 모두가 정승이 되었을 것이오."

라고 말한다. 주인장은 몇 년 전에 책방에 책을 빌리러 왔던 이 선비를 기억한다. 그 때는 아주 어렸었다. 그 때 필사하는 사람을 우연히 보고 자기도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집에 병든 사람이 있어서 약값을 대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때 호기심으로 필사 일을 시켜 봤는데 어른들의 두 배 분량을 거뜬히 해 오니 놀랄 뿐이었다. 아마도 밤새 필사를 하는 것 같았다. 선비가 실망한 얼굴로 돌아가고 난 후엔 장안 최고의 기생 초선이가 들어왔다. 부탁해 놓은 화첩을 가지러 온 것이다. 주인장은 초선만 보면 오금이 저렸다. 그래서 화첩을 공짜로 주려고 했지만 아내가 도끼눈을 뜨고 감시하고 있는 것을 알고 화첩대를 받는다. 화첩을 가지고 나오다가 초선은 책방 앞에서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곱상한 선비를 보고 자존심이 상한다. 다른 남정네들은 자기만 보면 사족을 못 써 안달인데 그 곱상한 선비는 자기를 보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나귀 고삐를 잡고 있는 떡칠이에게 선비를 따라가라고 한다. 선비 앞에 이른 초선은 무거운 서책을 당나귀에 대신 실어 주겠다는 등 유혹을 하지만 선비는 "지금까지 가난하고 병약한 탓에 아직 여인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속상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오."라고 말하며 사라진다. 이를 본 초선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다.

                          작가가 상상했던 김윤희도 이렇게 여성스럽고 예뻤을까?

2. 김도령이라 불리는 이 선비는 남산골 묵동의 한 초가집으로 들어간다. 그는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여인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름은 김윤희. 그를 맞이하는 것은 콜록거리는 동생과 걱정 많은 어미다. 동생 윤식은 누나가 자신의 호패를 가지고 남자 행세를 하며 일하는 것이 안쓰럽다. 외가에 다녀온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를 않다. 어머니는 노론 집안의 딸인데 남인 출신의 윤희 아버지와 결혼해 눈밖에 난 데다가 집안이 몰락한 후로 외가로부터 더 큰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윤희의 혼처를 알아보러 갔는데 50줄에 접어드는 후처자리를 말하더라는 것이다. 윤희는 이렇게 비참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동생 윤식이 대신 자기가 과거를 보는 일뿐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머니는 처음에 반대했지만 "남도 합격시켜 주는데 동생인들 왜 합격시켜주지 못하냐."라고 말하며 윤희의 계획에 의견을 모은다.

3. 소과 초시 중 진사시가 열리는 날 윤희는 김윤식이란 이름으로 과장에 들어섰다.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과거를 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리 좋은 자리를 맡아두는 선접꾼들도 와 있었기 때문이다. 윤희가 사람들에 밀려 넘어질 찰나 그녀의 팔을 꼭 잡아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좌상의 아들 이선준이었다. 훤칠한 키에 하얀 목덜미. 이것이 윤희가 본 선준의 첫인상이었다. 선준은 보통 사람 몸의 두 배는 되고 얼굴도 험악한 순돌이란 하인을 데리고 있었다. 선준은 하인인 순돌이를 동생 대하듯 아주 자상하게 대하고 있었다. 윤희는 선준 덕분에 순돌이가 맡아놓은 일산 펼쳐진 좋은 자리에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제에 맞는 글을 쓰고 몇 번이나 고치고 다듬은 후에 시권을 제출하려는데 선준은 먼저 시권을 제출하지 않고 윤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선준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윤희가 답안지를 줄줄 작성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는 윤희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모레 있을 생원시에도 나갈 거냐고 묻는다.

4. 생원시가 있는 날. 지친 발걸음으로 과거장에 도착한 윤희를 이도령이 반기고 있었다. 이도령은 윤희를 끌고 순돌이가 맡아놨다는 자리에 왔다. 그런데 자리 차지 때문에 시비가 붙어 있었다. 세력있는 집안의 아들이 힘을 이용해 순돌이가 맡아 놓은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던 것이다. 선준은 점잖게 선접꾼들을 보내었다. 그러나 거벽을 동원하여 부정을 저지르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나서 시대를 한탄한다. 윤희는 마음이 찔렸다. 혹 자기가 거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이 도령이 자신을 어찌 대할지 생각해 보았다. 곤장 100대에 중죄인이란 낙인 찍힐 테니 두 번 다시는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윤희의 마음을 모르는 선준은 간식까지 싸 가지고 와서 윤희에게 준다. 선준과 윤희는 비슷하게 시권을 빼곡이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윤희는 어깨 너머로 선준의 시권을 보았다. 그야말로 최고였다. 자기는 그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 시권을 작성하였는가. 부끄러웠다. 윤희는 자신이 과욕을 부린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선준은 합격자 발표날 다시 만나자고 한다. 그러나 윤희는 고개를 숙이고 제 갈 길로 간다. 그런데 선준과 순돌은 미행자의 기미를 느끼고 혹 아까 시비가 붙었던 선접꾼들에게 가난하고 병약한 선비가 당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워 윤희의 행방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윤희는 아까 시비가 붙었던 선접꾼들에게 당하고 있었다. 윤희는 자기가 죽으면 어머니와 동생도 함께 죽을 거라는 생각에 남자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이 때 기괴한 몰골의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윤희의 곱상한 얼굴을 보며 선접꾼들에게

"야, 너네 주인네가 남색이야? 음 너네들 해치우고 내가 계간해야겠다."

라고 말하며 네 명의 선접꾼들을 상대했다. 그런데 선접꾼들도 싸움 깨나 하는 사람들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괴한 몰골의 사나이가 밀리고 있었다. 팔에 상처까지 입었다. 윤희는 돌을 던지며 싸움을 도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때 선준이 순돌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순돌이가 달려들자 선접꾼들을 꼼짝을 하지 못하고 달아나고 말았다. 순돌과 선준의 활약으로 선접꾼들은 달아나자 그 기괴한 몰골의 사나이는 이렇게 말한다.

"뭐야? 계간질 상대가 따로 있었네. 시간 낭비했군."

윤희는 싸우다가 팔을 베인 그를 생각하고 따라가며 불로초 수가 놓아진 손수건을 건넨다. 그리고 보은하게 해달라고 하지만 "지금부터 내게 말 걸지 않도록 할 것. 그리고 그 재수 없는 얼굴을 두 번 다시 내 눈에 뜨게 하지 말 것. 그것이 보은이다."

라고 말한다.

5. 소과 초시 합격자 발표 날, 윤희는 남장을 하지 않고 쓰개치마를 쓴 채 발표장으로 간다. 진사시와 생원시 맨 앞에는 이선준이란 이름이 보였다. 윤희는 자신의 이름, 아니 동생의 이름이 진사시 중간과 생원시 중간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윤희는 힐끔힐끔 선준의 잘생긴 얼굴을 살핀다. 선준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을 의식하고 혹 김윤식과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여 이것저것을 묻는다. 그의 질문에 윤희는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렇게 끄덕이기만 하다보니 김윤식의 누나되는 이라는 사실까지 인정하고 말았다. 선준이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는 걸 윤희는 사양하고, 책방으로 가서 일거리를 부탁하지만 책방 주인은 일거리가 없단다. 선접꾼들이 윤희를 해하려고 했던 사실이 온 장안에 퍼졌고, 그 선접꾼들이 현재 옥에 있는 관계로 그 누구도 윤희에게 거벽을 부탁하려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필사일도 마찬가지다. 주인은 윤희에게 꼭 복시(초시 합격자들이 보는 2차 시험)도 보라고 한다. 계절은 가을을 거쳐 겨울에 이르렀고, 윤희는 20살이 되었다. 그동안 윤희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윤희는 공부를 하면서 혼자 하는 공부의 한계를 느낀다. 윤희는 복시를 보기로 한다. 윤희는 조흘강(과거에 응시하기 전에 치르던 예비 시험으로 소과 복시에는《소학》과 《가례》를, 대과 복시에는 《경국대전》과 《가례》를 앞에 놓고 외우게 하였다.)을 통과하고 녹명소(기명소)에서 녹명한 후 예조에서 시험을 치렀다. 그 곳에 선준은 없었다. 그러나 선준은 진사시 생원시에서 모두 장원을 했다. 윤희는 진사시에선 두 번째, 생원에선 여섯 번째로 합격을 한다. 방방례(합격자 수여식)를 하는 날, 예정과는 다르게 왕이 계신 궁궐에서 거행한다는 전갈이 왔다. 왕이 직접 합격자의 실력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좌상의 아들 이선준에겐 이미 점찍어 둔 인재였던 모양으로 왕은 하루 속히 대과에도 급제하여 자기 곁으로 오라고 말한다. 다음은 윤희. 윤희에겐 글뿐만이 아니라 외모도 여성스럽단 말을 한다. 윤희는 여자인 것이 들통날까 봐 오금이 저려오는데 왕은 소과 합격자 중 몇 명에게 성균관에서 거관수학할 것을 명한다.

신방례

1.이리하여 어쩔 수 없이 성균관에 온 윤희. 그런데 방을 하나씩 쓰는 것이 아니라 3~5명씩 동숙을 하는 것이다. 이 때 이선준은 자신과 같은 방을 쓰자고 한다. 성균관 유생들이 머물 방은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에는 주로 생원이 머물고, 서재에는 진사가 머무는 것이었는데 당파 싸움이 극심해지다 보니 동재엔 소론이나 남인 출신의 자제, 서재엔 노론의 자제들이 머물게 되었다. 이선준은 노론 영수의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동재에 머무르려고 한다. 학문을 함에 있어 당색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선준과 윤희는 중이방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방에서 함께 기숙하는 사람이 또 있다고 서리가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기숙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선준과 윤희가 중이방에 거하겠다고 하자 공포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선준과 윤희는 그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

2. 성균관에서 일하는 꼬마인 재직들이 선준과 윤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그 아름다움에 놀란다. 선준의 남성적인 아름다움, 윤희의 여성적인 아름다움은 아이들마저도 감탄하게 한다. 선준과 윤희는 재직들로부터 중이방의 주인이 미친말(걸오)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런데 최상의 사치품을 걸친 사내가 오더니 "자네들이 반궁(성균관)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입들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구용하다. 구용하는 걸오 때문에 어느 놈이라도 같은 방에서 두 달을 못 넘기고 도망간다고 말한 후 사라지고 선준과 윤희는 학업을 하기 위래 명륜당으로 향한다. 구용하는 윤희의 자태를 보고 딱 여자인지를 직감한다. 한편 선준은 명륜당에서 책을 고르며 윤희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미쳤군. 사내를 보고 뛰는 가슴이라니.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내는 사내인 것을."

선준은 고개를 흔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여기서 이 두 사내를 보는 박사들이 있었으니 바로 장 박사와 유 박사다. 장 박사는 선준과 윤희를 유심히 살핀다.

3. 선진과 신진간에 하는 인사인 상읍례가 있다. 신입들은 서장의에게 먼저 허리 숙여 인사하고 다음은 동장의, 그리고 가운데를 향해 절을 하였다. 바친 음식을 타박하는 것으로 신진 길들이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단연 눈에 띤 음식은 윤희가 가져온 고리짝이었다. 다른 신진들의 바구니엔 오색떡과 각종 다과 육포까지 들어 있었으나 윤희의 고리짝엔 우중충한 쑥떡이 전부였다. 그러자 동장의 옆에 앉은 색장(학생회 간부)이

"이걸 먹으라고 가져온 건가? 버리라고 가져온 건가?"

라고 소리친다.

"우리를 네 집의 돼지쯤으로 여기는 거냐."

그의 발길질에 고리짝이 마루로 떨어져 쑥떡은 땅바닥에 흩어졌다. 윤희가 이를 보고 그 수많은 책들 속에 가난한 음식은 함부로 해도 된다는 가르침이 있냐고 따지자 색장은 분노하고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이 때 선준은 기단 위로 올라가 흙 묻은 쑥떡을 집어 털어서 다시 고리짝에 넣었다. 그는 마지막 들어올린 쑥떡은 털지도 않고 입에 넣었다. 윤희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가 입에 든 것을 빼내려고 하였지만

"백성의 고혈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르는 자라면 아마 이 맛을 모를 거요."

라면서 다 먹었다. 그러자 용하도 쑥떡 하나를 집어먹는다. 이렇게 하여 음식은 모두 바쳐졌고, 이제 궐희가 시작되었다. 궐희란 공자를 황제로 둔 모의 조정 놀이로 성균관 유생들이 즐기는 장난 중의 하나다. 가운데 앉은 서장의가 지금은 황제 즉 공자란 뜻으로 그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서장의는 신진들에게 봉투 하나씩을 주었다. 그리고 삼경까지 봉투 안에 든 임무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웃옷을 벗겨 반수에 빠뜨리겠다는 것이다. 다른 신입들에겐 비교적 쉬운 임무가 주어졌으나 선준과 윤희에겐 그러지 않았다. 윤희에겐 기생 초선의 속곳을 가져오라는 임무가 주어졌고, 선준에겐 병조판서의 딸인 부용화를 만나 하룻밤의 인연을 맺고오라는 임무였다. 선준은 병조판서의 딸인 부용화를 만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연을 맺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윤희도 초선을 만나러 모란각에 갔으나 초선은 아니 오고 기생들이 자꾸 윤희의 옷을 벗기려고 한다. 여림 구용하가 성균관 신입 유생의 가슴에 입술 자국을 내는 기생에게 금반지 하나를 주겠다는 약속을 한 모양이다.

4. 하지만 이 모습은 곧 초선에게 들키고 윤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하지만 막상 초선에게 속곳을 달라고 하려니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초선은 어떻게 알았는지 윤희에게 자신의 속곳을 내밀며 필요한 것이 이게 아니냐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가끔 만나러 와 준다면 속곳을 드리겠다고 한다. 너무 쉽게 초선의 속곳을 얻은 것 같아 윤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초선은 붓을 들어 속곳에다 모란을 그리기 시작했다.

5. 인경(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서 순라를 만나면 머리통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윤희는 무서웠다. 열심히 달렸지만 순라에게 잡히고 만다. 그러나 순라는 윤희가 성균관 유생이란 말을 듣고 오히려 예를 갖춘 후, 놓아 주었다. 여기서 윤희는 순라들에게 벽서를 뿌리는 홍길동 같은 인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말을 듣는다. 이름하야 홍벽서.

반촌까지 오자 순라들은 돌아갔다. 반촌은 성균관을 위해 생긴 마을인데 이곳은 치외법권 지역이라 순라들이 들어오면 안 된다. 반촌으로 들어와 성균관으로 향하는 윤희를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아서 윤희는 성균관 문을 두드리지만 그 그림자는 윤희의 코앞까지 왔다. 가까이서 보니 예전에 윤희가 선접꾼들에게 당할 때 도와주던 그였다. "여전히 예쁜 놈이로군." 이 때 마침 수복이 오른 쪽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어? 걸오 유생님도 돌아오셨군요."라고 말한다. 돌아와 보니 윤희와 선준만 제외하고 모두 검사를 맡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선준은 과제를 이행하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양가집 규수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윤희는 초선의 속곳을 보여주었다. 선진들의 시선이 윤희에게 모여졌다. 어떻게 해서 초선에게 이 속곳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모두 경외하는 눈치였다. 더군다다 '뉘가 짧은 밤이 긴 밤보다 모자라다 하더이까. 황홀했던 오늘의 짧은 밤. 길고 길었던 어느 밤이 부럽겠습니까.'이런 글까지 쓰여 있지 않은가. 용하는 이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자기의 눈썰미는 틀림이 없었는데 그럼 김윤식이 여자가 아니란 말인가. 분명 여자인데... 하지만 선준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기에 웃통을 벗고 반수에 빠지게 되었다. 수복들은 반수에 오줌을 쌌다. 이 때 윤희가 나선다.

"잠깐 저에게 1등한 대가로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다고 했죠. 그 소원을 이선준 상유를 위해 쓰겠습니다. 이선준에게 내린 벌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선준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자 윤희는 그럼 차후에 이선준에게 소원 하나를 받겠다고 한다.

대물도령

1. 중이방에서 걸오는 그 예쁘장했던 사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우연에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윤희가 중이방에 들어왔을 때는 크게 분노하지 않고 통성명까지 했다. 그러나 선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노론놈의 새끼가 들어와?"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선준은 그를 알아보고

 "그 때 도와주신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라고 말하며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선준이 계속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재신은 답답한지 옷을 훌훌 벗어던진다. 그러면서 윤희에게 엉덩이를 봐달라고 한다. 윤희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당황하고 대신 선준이 나서서 피투성이가 된 재신의 엉덩이를 보고 빨리 치료를 해야겠다고 말한다. 이 때 구용하도 이 방에 있었으므로 용하가 재신의 엉덩이에 약을 발라주며 말한다.

"자네는 어째 계집이 다달이 옷에 월경을 묻히듯이, 허구한 날 옷에 피를 묻히는가?"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윤희. 용하는 재신의 엉덩이를 치료하며 연신 음담패설을 하면서 자신의 별호인 '여림(女林)'은 여자의 음모를 말하는 것으로 평생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살고 싶은 그의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별호는 걸오 문재신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용하는 자신을 비롯한 다른 유생들은 대부분 혼례를 치른 후에 입학을 하는데 중이방의 세 사람은 어째 혼례를 치르지 않았느냐며 모두 미취한 자들이라고 한다. 용하도 아주 어릴 적에 누님같은 이와 혼례를 치렀는데 못 본 지가 3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는 과거에 등과를 하지 못하면 소실을 둘 수 없다는 법도가 있어 성균관에 입학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준이 "신례침학(면신례.신참례)은 여림께서 주도한 것이지요?"라고 말하자 용하는 그렇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마침 치료가 끝났으므로 선준의 질문을 모른 척한다. 용하의 계속되는 음담패설과 농담에 문재신은 그를 밖으로 쫓아내고 잠을 자려는데 이런 난처한 일이 있을 수가. 선준은 윤희가 이불을 가져오지 않을 것을 알고 순돌이를 시켜 이불 한 채를 더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그 이불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선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이불을 사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게다가 재신이 노론과는 살을 맞대고 눕고 싶지 않다고 해서 윤희는 어쩔 수 없이 가운뎃 자리에 들어가 자리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불을 끄고 나서도 불안해서 적삼을 꼭 쥐고 있는데 선준과 걸오 사이에 시비가 붙는다. 선준이 걸오에게 사람을 보기에 앞서 당파를 먼저 보는 사람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걸오가 일어나서 선준의 멱살을 잡자 윤희는 두 사내 사이에 끼인 꼴이 되었다. 그러다가 선준의 가슴에 자기의 입술이 닿은 것을 느끼고 흥분을 하여 위로 주먹을 뻗었는데 그것이 걸오 문재신을 강타한 것이다. 화가 난 걸오는 윤희의 멱살을 잡고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윤희를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조그맣고 야들야들한 자식을 어떻게 때릴 수가 있는가. 윤희는 누워서 눈을 꼭 감고 기절한 채 있었다. 이런 땐 이렇게 있는 것이 최고다. 재신은 소리만 버럭버럭 지른다. 재신의 이런 소리는 옆방까지 다 들렸다. 다른 유생들은 문재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윤희를 보고는 진정한 '대물'이라는 별호를 준다.

2. 다음날,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난 윤희는 세수를 하라는 수복의 말에 방안에 있는 세숫대야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 수복이 와서 물을 부어준다. 부어준 물에 세수를 하고 발을 닦으면 수복이 와서 세숫대야의 물을 버리고 새 물로 갈아준다. 윤희는 털이 숭숭 난 남자들의 다리를 보고 차마 자신의 다리를 걷고 발을 씻기가 부끄러웠다. 윤희는 자기도 모르게 선준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잘생겨도 잘생겨도 어찌 저리도 잘생길 수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선준과 눈이 마주친다. 윤희는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나 선준은 그것을 열로 생각한다. 윤희에겐 사내들의 벗을 몸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아, 언제까지 벗은 몸을 봐야 하나.

윤희는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자기보다 어린 유생들을 보게 된다. 신참례 때는 못 보던 유생들이라 궁금해서 물어보니 하재생이란다. 정식으로 들어온 유생들은 상재생, 사부학당(한양의 부에만 있던 중등교육 기관)에서 승보시(과거시험 중의 하나)를 통과한 자들이거나 잘난 아비 덕에 뒷구멍으로 들어온 자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재생 중 한 명이 유난히 윤희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이유를 용하에게 묻자 가랑 옆에 앉아 있기 때문이란다. 가랑은 '최고이 신랑감'을 뜻하는 말로 용하가 지어준 것이다. 같은 유생들끼리도 이렇게 질투를 하다니 윤희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데도 서재생과 동재생이 다른 문으로 들어가 다른 자리에서 한다. 나온 반찬을 보니  여덟 가지다. 늘 죽만 먹던 윤희에겐 진수성찬이다. 하지만 용하는 자신이 원하는 반찬이 나오지 않았다며 투덜댄다. 윤희는 그를 보며 같은 유생 간에도 빈부격차가 심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가 빵빵해지도록 식사를 한 윤희는 식당을 나오다가 하재생 외에 또다른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남반이라고 불리는 이로 생원 진사시에 입격한 서얼들이라고 했다. 원래 서얼들은 과거응시자격이 없었지만 당저(정조)께서 서얼의 일부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도록 윤허하신 거란다. (그래서 서얼 출신의 유명한 학자 박제가가 탄생한 것이죠.) 하지만 남반들은 청재에는 들어오지 못한단다. 식사를 마친 후, 중이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용하가 따라 들어온다. 걸오를 깨울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문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걸오. 하지만 용하는 걸오가 3년 전에 소과 진사시에서 장원을 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웬일인지 성균관에 들어와서는 미치광이처럼 딴짓이나 하니 아마 소론의 명문가 자제가 아니었다면 벌써 퇴출되었을 거라 한다.

선준은 기별(조보:정부간행물)을 읽기 위해 약방으로 간다. 약방 앞 바구니에 기별을 넣어둔다는 용하의 말을 듣고 말이다. 윤희가 선준에게 왜 이 어려운 기별을 읽느냐고 하자 조선을 변화시키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다 나은 조선을 꿈꾸는 이는 비단 선준만이 아니었다. 재신도 용하도 모두 기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윤희에게 기별을 꼭 읽어보라며 '조선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 비난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3. 선준은 수복에게 대사례 때 썼던 활과 화살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육일각에 있다고 하자 선준은 윤희와 함께 육일각으로 간다. 윤희는 선준이 골라준 활과 화살을 들고 비천당으로 간다. 그 곳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선준은 과녁에 화살을 꽂았다. 선준의 평상시 실력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윤희는 활시위를 당기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선준은 친절하게 윤희에게 활쏘는 법을 가르쳐 준다. 활쏘기는 선비라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육예( 예학, 음악, 활쏘기, 말타기, 서예, 수학) 중 하나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활쏘기를 가르치다가 선준은 멈칫하였다. 윤희에게서 나는 향기가 일반 사내에게서 나는 향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이상함을 파악할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윤희는 한 개의 화살도 과녁에 꽂지 못했다. 이 때 걸오 문재신이 나타난다. 그리고 용하에게서 들은 대물이란 별호를 써가면서 비꼬는 듯 말하자 윤희는 "하하하, 제가 비록 외모는 이러하여도, 보이지 않는 곳은 썩 사내답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과녁에서 화살을 빼내고 있는 선준을 향해 재신이 시위를 당긴다. 이를 알고 윤희는 깜짝 놀란다. 다행히 화살은 선준을 살짝 비켜간다. 윤희가 무슨 짓이냐고 하자 저 노론 놈들이 모든 벼슬자리를 차지하면 우리는 차지할 게 무엇이냐고 따진다. 그러면서 저 놈을 이렇게 눈에 띄게 죽일 리 없다며 아무도 모르게 죽일 거라고 한다. 윤희는 이렇게 서로의 목을 베지 않으면 자기의 목이 베인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모두가 서로 죽이지 못해 미쳐 날뛰는 세상이다. 그런데 재신과 윤희를 향해 달려오는 선준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재신이 윤희의 턱을 잡고 있을 때부터다.

선준은 오자마자 재신의 손목을 잡아 그의 손이 윤희의 얼굴에서 떨어지게 하였다. 선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목을 잡은 것 같지만 재신은 손목이 끊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선준이 손목을 놓았을 때 재신은 손목을 쥐고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비천당을 떠나오면서 선준은 윤희에게 재신이 자신을 죽이려한 것이 아니라며 윤희의 오해를 풀어준다. 과녁중앙에 꽂힌 화살자국들을 보며 재신이 명사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만일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면 벌써 죽였을 거라고, 그러니까 재신은 노론의 자식인 선준을 경계했던 것이다.

명륜당 마당에 서재와 동재가 줄을 서자 성균관 대사성은 정인지, 이황, 정철, 송순, 김만중, 이익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대사성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말하고 스승의 권위가 추락하는 시대를 한탄했다. 길고 긴 성균관 대사성의 조회가 끝나자 성균관 유생들은 드디어 명륜당으로 들어선다. 첫 시간은 장상규 박사의 대학 강의였다. 여기서 윤희는 '大學之書 古之大學 所以敎人之法也'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대학이란 책은 옛날 대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입니다."라고 직역한 뜻을 말하였다. 그러자 장 박사는 다음 수업에도 그런 답을 하면 참관을 금지시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선준은 대학의 어원과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장 박사는 선준의 말을 부연설명하였다. 윤희는 장박사가 하는 말을 깨알처럼 빈 종이에 언문으로 써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학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된다. 한편 수업이 끝난 장 박사는 유 박사와 만나 선준과 윤희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준의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과 윤희가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의 강의를 받아 적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4. 오후에는 박사 유창익의 경국대전 강의가 있었다. 윤희는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대과 복시를 치르기 전에는 경국대전으로 조흘강을 치르는데 좋은 성적을 내려면 완전히 이해를 해야 한다. 강의 내용은 어려웠지만 왠지 선준은 잘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윤희가

"귀형께선 알아들으시죠? 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자 자신도 그냥 따라 읽어내려가기도 힘들다고 엄살을 떤다. 윤희가

"얄미우십니다."라고 하자 선준은 윤희가 왠지 여성처럼 느껴진다. 윤희는 순간 아차 싶었는데 등 뒤에서 여림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능글능글거리고 있다. 윤희는 온몸에 소름이 쪽 끼치었다. 수업을 다 마치고 동재로 돌아오자 문재신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웬일인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방들도 조용하다. 알고보니 향관청이나 반촌으로 갔다는것이다. 동아리를 만들어 가끔은 나라에서 금하는 책도 읽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학 같은 거 말이다. 그러자 선준이 산학(算學)을 공부하는 동아리는 없냐고 한다. 그러자 상업에 관심이 많은 용하가 함께 공부하자고 한다. 그러더니 윤희와 재신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4사람이 모두 산학동아리의 회원이 되었음을 마음대로 선언한다. 노론놈하고 책상머리에 앉기 싫다는 재신을 향해 선준은 "걸오 사형, 제게 가르침 받게 될까 봐 안 하시려는 거지요? 자존심은 버리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재신은 불끈하며 자기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이리하여 용하의 의도대로 산학 동아리가 만들어진다.

그날 문재신, 이선준, 김윤식 세 사람은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런데 피곤에 지친 윤희가 먼저 잠이 든다. 이부자리를 깔고 윤희를 안아 자리에 눕히던 선준은 깜짝 놀란다. 윤희의 몸이 너무 가벼웠는데 아무래도 보통 남자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준은 윤희가 어려서부터 너무 못 먹어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유건과 행의, 버선을 벗겨 주는데 아무래도 이건 남자가 남자의 옷을 벗겨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의 옷을 벗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간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선준이 이러고 있는데 재신이 윤식이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고 묻는다. 사실을 말하자 재신은 윤식이를 노론으로 끌어들일 생각으로 만났냐고 한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선준 자신도 왜 이 김윤식이란 대물도령과 가까워졌는지 의문이다. 글동무? 그것뿐이 아니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유가 선준을 끌어당긴 것이다. 잠이 든 윤식이 베개가 없자 자기 어깨 위로 머리를 올린다. 선준은 이런 윤식을 보며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느낀다.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가까이 있는 그의 체온이 따뜻하여 선준은 윤희를 꼭 끌어안는다.

부용화(芙容花)

1. 저녁 식사 후 산학 동아리가 있는데 문재신은 외출 준비를 한다. 갓을 사온다면서 말이다. 문재신이 나간 후 명륜당에서 재회가 열린다는 공고가 내려지고 선준, 용하, 윤희는 명륜당으로 향한다. 알고 보니 하색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성균관의 임원은 각각 동재와 서재에 한 명씩의 장의(동장의, 서장의), 상색장(2명), 하색장(2명)이 있다. 명륜당으로 가다가 선준은 서재 유생들에게 잡힌다. 서재의 하색장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준은 이 제의를 거절한다. 하색장 선거가 끝나고 중이방으로 돌아와서도 선준이 기운 없이 앉아 있자 윤희는 선준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여자들처럼 수다를 떨자고 한다. 그러다가 윤식의 누님 이야기가 나왔다. 윤희는 자신이 윤식의 누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 누님에 대해 아주 좋게 이야기한다.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여림이 인기척도 없이 들어온다. "하루라도 여인의 냄새를 맡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데 왠지 이 방에만 오면 견뎌진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리면서. 여림은 선준에게 "대물 도령, 정말 예쁘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대물도령이 혹 여인인지 의심해 본적은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선준은 여림에게 사람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며 따끔한 충고를 한다. 그래도 여림은 한 술 더 떠서 만약 대물과 똑같은 여인이 있다면 아내로는 어떤가라고 질문을 한다. 그러자 선준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윤희는 여림이 가져온 과자를 먹으며 세상에 자기와 똑같은 여인은 없다고 말하는데 한참 고민을 하던 선준은 대물도령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다. 윤희는 내심 실망을 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선준은 과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대물도령 같은 여인이 있다면 더없이 이상적인 여인이라고 말한다. 이 때 걸오가 들어온다. 재신은 선준의 말을 받아 대물같이 고분고분하지 않고 말마다 대꾸하는 여인은 골치아프다면서 아내감은 바보천치만 아니면 되지 결코 많이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갓을 사러 갔던 걸오가 윤희의 유건까지 사 온 것이다. 말로는 갓을 사니까 하나 끼워주더라는 말을 했지만 아무래도 끼워주기에는 비싼 유건이었다.

2. 내일이 성균관이 쉬는 날이라 윤희와 선준은 저녁 식사를 끝내자마자 집으로 갈 채비를 부산히 하였다. 윤희는 앞서 맡겨놓은 책 때문에 선준의 집부터 들르기로 했다. 반촌을 벗어나 북촌으로 향하는데 길 옆에 웬 가마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청지기가 선준에게 다가와 가마 안에 있는 분은 병판 집 딸인 부용화라는 사실을 알린다. 가마에서 한 여인이 목을 숙이고 천천히 일어섰다. 이 여인의 미모는 연꽃도 사그라들만큰 대단했다. 선준은 윤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부용화를 만나겠다고 한다. 윤희는 자기도 모르는 질투심에 다음 번에 여유있게 집에 가자는 선준의 말에 삐져서 자기도 빨리 집에 가봐야 한다고 말하며 냉큼 선준을 떠나버린다. 선준의 시야에서 벗어난 윤희는 힘이 빠져 남산골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에잇! 가량 형, 별로다! 여자 꽁무니 쫓아가는 꼴을 보라지. 완전히 꼴불견이었어. 부용화도 뭐야? 규방 처녀가 길에서 외간 남자를 유혹하면 쓰나. 아마 겉모습만 요조숙녀고 속에는 초선보다 더 큰 여우가 들어 있을 거야. 에이, 뻔해. 뻔해."

윤희는 갑자기 자기가 여자라는 것을 선준에게 밝히고 싶었다. 가랑이라면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줄 것 같았다. 한편 선준은 대물 윤식이 그렇게 삐져서 힘없이 돌아선 모습을 생각하며 효은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데도 윤희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몸을 돌려 가려는데 효은이 선준을 붙잡는다. 만나는 것이 곤란하시다면 서찰이라도 교환하는 게 어떻냐는 것이다. 선준은 이것마저 뿌리칠 수는 없었다.

한편 여림 용하는 어김없이 모란각의 기생들을 찾는다. 용하는 기생들과 본격적으로 놀기 전에 초선이를 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도령 어쩌구저쩌구 하니 초선은 부르지 않아도 용하에게 달려온다. 사실 용하는 초선이에게 대물 김윤식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물으려고 온 것인데 어쩌다 보니 윤식이 여기에 찾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학업 때문이라며 그를 두둔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김도령을 누르고 있는 가난의 무게가 너무 크다는 말도 한다. 성균관 내에서 이리저리 얻은 것을 가족들한테 주려고 갔다면서. 용하는 이런 말을 하며 자신이 윤식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식이 사내던 여자이던 인간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초선이도 가엾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 김 도령 많이 좋아하지는 마라."라고 충고한다. 용하가 이렇게 모란각에서 초선이와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덕구 아범이 용하를 찾아왔다. 덕구아범은 용하가 원하는 물건을 건넸다. 그런데 그것은 홍벽서란 사람이 뿌린 글이였다. 병조 내에 있는 관리들의 비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덕구아범이 왜 그리도 홍벽서의 글에 관심이 많냐고 물으니

"재미있어서. 그리고 이 사람의 글이 너무도 좋아. 우리 언문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고나 할까? 마치 내가 퍼부어야 할 욕설을 그가 대신에 주는 기분이 들어. 참 묘해."

용하의 아버지는 양반이라 상업에 종사할 수는 없지만 가짜 상인을 대표로 실질적인 육의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용하는 금난전권(상인들이 장사를 하려면 육의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육의전의 주인은 난전을 금하는 권리를 갖게 된다.)을 가진 육의전의 권한이 그리 오래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덕구 아범이 돌아간 후, 용하에게 기생들이 몰려오고 용하는 이 기생 저 기생 몸을 만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3. 초선이 마당에 핀 민들레 꽃에 취해 있자 추월이가 나와서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초선의 마음을 알고 꿈을 깨라고 말한다. 김도령은 같은 방을 쓰는 상유네 집에 놀러갔다고 말이다. 그러자 초선의 마음이 어두워진다.  멀리서 인경(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 윤희는 집에 도착했다. 집엔 불씨도 없고, 쌀독엔 쌀이 없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어머니가 나오신다. 어머니는 윤희의 손을 잡고 아무 탈이 없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노란 저고리와 다홍색 치마를 만들어 놓고 계셨다. 윤희를 주기 위해서다. 쌀 사라는 옷감으로 윤희의 저고리를 만든 것이다. 어머니는 윤희가 대과에만 급제하면 다시 여자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 저고리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윤희는 선준이 다른 여인과 혼인하고 난 뒤, 여자로 돌아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윤희는 성균관에서 얻어온 음식하며, 서책, 약재를 내어 놓았다. 다음날 윤희는 동생 윤식이에게 성균관 이야기를 해 준다. 가랑 선준, 걸오 재신, 여림 용하에 대해 그런데 선준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누나의 표정이 행복하다.

4. 윤희는 집을 떠나 서책방에 들른다. 주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필사일을 구하는데 윤희가 성균관의 상유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마침 딱 맞는 일자리가 있다고 일러준다. 주인장은 관례나 혼례 때 청혼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문서를 성균관 유생이 써주면 오래산다는 둥, 출세한다는 둥의 미신이 있다는 말을 한다. 그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다. 윤희는 그럴듯한 일자리라고 생각한다. 서책방을 나와 윤희는 모란각으로 향한다. 초선은 윤희를 보자 그동안의 원망스러운 마음은 씻은 듯이 사라지는 듯했다. 윤희는 초선과 산책을 한다. 윤희는 사내가 되어보면서 왜 진짜 사내들이 기생들의 치맛자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윤희는 저녁무렵 성균관에 도착했다. 선준은 내일 아침에나 돌아온다고 하였기에 그가 없는 것이 당연했으나 왠지 마음이 허하였다. 그런데 중이방에 들어가보니 그의 갓과 함께 책상위에는 서책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그가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윤희는 진사식당, 존경각, 비천당, 정록청 등등을 뒤졌다. 그러나 선준은 없었다. 이윽고 윤희는 서재 건물까지 와 있었다. 그러자 서재 쪽에서 서재생이 이 곳 서재에 무슨 용건이 있어 왔냐고 소리지른다. 보아하니 하재생인 듯 싶어서 감히 하재생이 상재생에게 반말이냐고 세게 나갔더니만

"푸핫, 비렁뱅이 주재에 상재생? 우리 같은 명문가 자제들에게 공대를 받고자 하였더냐?"

라며 한 하재생이 독기를 품고 말하였다. 그러나 윤희는 지지 않았다. 이 때 한 유생이

"여보게 가랑 사형이 대정전에 계신 걸 모르고 큰 소린가. 이 곳으로 오면 어쩌려고."

라고 말해 윤희는 선준이 대성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희는 얼른 대성전으로 향한다. 산책을 하고 있는 선준이 보인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녀는 눈물을 닦고 선준에게 간다. 선준은 내심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표정관리를 하고

"귀공이 내게서 도망간 것인지, 내가 귀공에게서 도망간 것인지 모르겠소."

라고 말한다. 그러자 윤희도

"제가 귀형을 쫓아가는 것인지, 귀형이 저를 쫓아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다 부용화 이야기가 나오자 선준은 그녀와 다시 만나자고 하고 서신도 교환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굴도 곱고 마음도 고운 그녀에게 사내의 마음이 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니겠냐고. 이 말을 들은 윤희는 "그렇죠. 그래야 사내죠."라고 힘겹게 말했다. 선준이 윤희를 향해 돌아서자 윤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감쌌다.

"제 얼굴을 보지 마십시오. 못난 표정까지 가려주진 못합니다."

"못난 표정이라니?"

"사내라면 그 여인에게 반해야지요. 저도 사내입니다. 어제 부용화를 보고 저도 내내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귀형이 부러워 견딜 수 없어서 이러는 겁니다. 여기로 오는 길에 초선과 노닥거렸으면서도 또 부용화 얘기를 하니 저란 사내가 이렇습니다."

이렇게 거짓말로 윤희는 자기의 마음을 숨겼다. 하지만 선준은 윤희의 이 말을 듣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도 초선이란 기녀를 만나는군."

그날 밤 재신이 돌아오지 않아 둘이서 잤건만 선준이 부용화와 만난다는 말에 윤희는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5. 윤희가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어제의 건방진 하재생이 시비를 건다. 윤희는 상재생으로서 하재생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시비를 거는 이유를 물어보니 윤희가 들어오는 바람에 성균관의 품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윤희는 기죽지 않고 오히려 소리를 높여

"아비의 권세를 등에 업고 들어온 너희들이야. 이곳 성균관에 내가 들어온 것은 임금께 강제로 떠밀려 온 것이야. 그러니 상감마마께 직접 상소를 올려라. 실력에 상관없이 아비 권세 순서대로 입관되도록 법을 몽땅 뜯어 고쳐 달라고 해."

라고 말하니 하재생 한 명이 윤희의 뺨을 때린다. 윤희는 독을 품고 여자라는 사실도 잊고 하재생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하여 하재생 5명과 윤희 혼자 싸우는 형상이 되었다. 비온 뒤의 흙구덩이 속에서 함께 뒹굴었다. 이때 선준과 용하는 명륜당에서 싸움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윤희가 또래 하재생의 어깨를 물어뜯고 있었다. 서장의가 나타나 싸움을 말렸다. 윤희가 가문을 모욕당한 항변이었으며 함부로 반말을 한 하재생을 훈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에 하재생이 윤희에게 저자식이라고 하자 반궁 남인의 구심점인 신원덕이

"누가 누구더러 저 자식이라고 하는가! 하재생이 감히 상재생에게 하대를 하였단 말이냐? 이는 우리 남인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니 서장의의 입장도 곤란해졌다. 이 때 선준이 혈기왕성한 사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니 용서하라고 말한다. 선준은 하재생의 아비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노론들임을 알기에 하재생에게 벌을 내렸다간 그 화가 윤희에게 미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서장의가 윤희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묻자 윤희는 고개 숙여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하재생을 끌고와 사죄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다. 어쨌든 일은 이렇게 끝이 났고, 동재로 들어오자 선준은 화가 난 듯 아무 말도 않고, 용하는 윤희와 선준의 중간에 끼어서 일을 잘 무마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재직(심부름하는 어린 아이)들이 물수건을 가져와 얼굴을 닦아내자 윤희의 얼굴이 온통 피멍이었다. 용하가 깜짝 놀라며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서 옷 벗어 보게. 내가 상처를 봐 줌세."

라고 너스레를 떨자 윤희는 괜찮다고 한다. 용하는 자기 옷도 더러워졌으니 옷을 갈아 입어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한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멱살 잡고 싸운 놈들과 정방에서 맨살 보이면서 목욕하긴 민망한 노릇이지. 홀로 목욕하기엔 어두워지고 난 뒤의 비복청이 좋은데. 우물도 있고, 또 밤에 아무도 없으니."

선준은 윤희가 얼마나 다쳤는지 염려되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선준은 깨끗한 물수건으로 윤희의 얼굴을 닦아주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무엇이 미안한지는 모르지만 그냥 미안한 것이다. 이런 선준을 보고 윤희는 가슴이 아리고, 저미고, 쓰라리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윤희는 성균관을 나가도 계속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선준에게 묻는다. 자신은 한적한 지방 고을의 수령이 될 테니 아마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윤희는 눈물을 흘린다. 얼굴이 수건에 가려져 눈물을 숨길 수 있었지만. 그러나 선준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주상 전하의 권능이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지방의 한직으로 발령 내릴 임금이었으면 성균관 거관 수학을 명하지 않았을 것이오."

잠시 후, 걸오가 와서 알록달록해진 윤희의 얼굴을 보고 흥분한다.

"야, 네 꼬라질 이리 알록달록하게 만든 놈이 누구냐? 노론 놈의 소행이지?"용하가 이를 보고

"자네와 상관 없는 일에 왜 그리 화를 내나? 자중하게."

라고 말하지만 걸오는 계속 씩씩댄다. 윤희는 걸오가 자기를 걱정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마워 그 뜻을 전하자 재신은 멋쩍어 이렇게 중얼거린다.

"요즘 몸이 근질근질해서 싸움거리를 찾았을 뿐이야. 아깝군. 조금만 일찍 돌아왔더라면 나도 핑계 대고 아무 놈이나 신나게 패 줄 수 있었을 텐데."

이윽고 재직들이 달걀 두 개를 가져오자 선준은 방금 전에 걸오에게 맞은 여림에게 하나를 주고 하나는 윤희의 눈두덩이게 갖다 대고 문지른다. 윤희는 마치 그의 손이 자신의 상처를 문질러 주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다음 날, 명륜당으로 유생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이 때 명륜당의 문이 벌컥 열린다. 모든 유생들의 얼굴이 새파랗다. 걸오다. 하재생들은 걸오가 왜 저리도 화가 났는지 알고 있는 터라 벌벌 떨었다. 특히 윤희와 맞붙어서 싸움질을 하던 임병춘은 사지가 바르르 떨렸다. 하재생들은 재신이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어깨를 다쳤냐느니, 턱을 다쳤냐느니, 무릎이 까졌냐느니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재신이 조용히 하라는 뜻에서 입술에 열십자 모양으로 손가락을 갖다 대니 모두 입을 꼭 다물었다. 너무 빨리 다물어서 혀를 깨무는 하재생도 있었다.

"난 말이다, 알록달록한 게 싫다!"

재신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방을 나갔으나 그동안 긴장했던 하재생들은 재신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바닥에 쏟아지듯 쓰러졌다.

장치기 놀이(격구: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민속놀이로 오늘날의 필드하키와 비슷함)

1. 처음 네 명으로 시작된 산학 동아리에 5명이 더 들어왔다.

그 중 세 명이 동아리 공부가 끝나자 걸오에게 달라붙어 시문을 부탁하는 것이다. 문집을 하나 만들 건데 꼭 걸오의 작품을 싣고 싶다는 것이다.  하도 귀찮게 구니까 걸오가 붓을 들어 몇 자 적은 후 훽 던지니 그들은 걸오의 작품을 얻었다며 기뻐하고 있다. 걸오의 작품을 건네받은 유생들은선 윤희에겐 사뭇 위협적인 투로 글 하나 지어달라는 것이다. 지어줄 때까지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될 거라면서. 그 사이 선준은 수복의 손짓에 나가서 서찰을 받는다. 아마도 부용화의 서찰일 것이다. 부용화는 하루도 빠짐없이 선준에게 서찰을 보내는 것이었고, 선준도 별 내용 쓰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꼭 답장을 쓴다. 이를 바라보는 윤희의 마음은 찹찹하다. 윤희는 걸오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대단한 문장가라는 사실에 놀라며 걸오의 글이 좋다고 하자 재신은 그 글은 남의 나라 문자로 썼기 때문에 가짜 글이란다. 그러면서 언문으로 진짜 글을 써서 준다.

까치에게 이르노니(능운의 시에서 차운하다.)

달이 뜨면 오마고 약속하고 가신 님이면,

님 계신 곳은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다 위로하면 될 터이고,

꽃이 피면 온다고 약속하고 가신 님이면,

님 계신 곳은 봄이 늦어 꽃이 더디 핀다 위로하면 될 터인데.

까치야! 부질없는 너의 노래로 위로 삼는 탓은,

아무 약속도 않고 가신 나의 님을 차마 원망할 수 없음이다.

윤희는 그 시를 빼앗길까 얼른 소매자락 속에 넣어 두었다. 선준이 돌아와 윤희가 준 재신의 시를 읽고 그의 글에 사로잡혀 있을 때 동재의 재직들이 몰려왔다. 윤희에게 서찰 하나를 건네는 것이다. 윤희는 재직이 준 서찰을 읽고 선준에게 주었던 걸오의 글을 다시 받아 챙기며 반촌을 향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자 용하는 반촌 여인들에게 대물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를 말하며 혹시 모르니까 미행을 하잔다. 선준과 재신도 궁금했다. 무슨 일이기에 아무 말도 않고 사라지는가. 윤희가 주변을 살피다가 주막으로 들어갔다. 늙은 사내 두 명이 고급스러운 종이를 내밀자 윤희는 거기에 무엇인가 쓰려는 것이다. 참다 못한 재신이 가서 윤희의 팔을 붙잡자 윤희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전 지금 사주단자를 쓰고 있는데....."

재신이 사태를 파악하고 윤희의 팔을 놓는 대신 용하의 멱살을 잡자 윤희가 다가와서 세 명이 모두 자신을 미행한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특히 선준에겐 더. 멋쩍어진 선준은

"이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무언가 숨기는 듯하여 걱정이 된 거요."

라고 변명을 한다. 그러자 윤희 왈

"가랑 형님은 제게 숨기기도 하고, 거짓말까지 하는데, 저라고 시시콜콜 다 말해야 합니까?"

윤희는 자리로 가서 주문받은 문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서책방의 주인장은 돈 주머니를 받는다. 제 것을 떼고 윤희에게 건네 주며 소개가 하나 더 들어와 있으니 다음에도 부탁한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이 물러가자 용하가 선준과 재신을 양팔에 끌고 와서 술상에 앉는다. 선준은 공부하기도 바쁜 이 때에 윤희가 알바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왔다.

"내가 그동안 귀공이 제대로 자는 것을 전혀 보질 못하였소. 공부하랴, 여기에 시간 내랴, 몸이 어찌 견딜 수 있겠소."

윤희는 선준과 재신 용하가 모두 자신을 걱정하고 있단 사실이 고마워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남자로 태어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한다. 드디어 술상이 차려지고 반촌의 여인네들은 이 잘생긴 네 남자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선준이 술을 마시지 않자 용하는

"순자가 말했네. 천지사이에 인간이 입고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충분히 여유가 있으니, 지나친 절약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곤을 초래한다고 했네."라고 말하며 술을 권한다. 그러자 선준은

"세상천지에 풍족한 것이 많다고 하나, 백성들의 하늘인 쌀까지 풍족한 것은 아니기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 저까지 굳이 백성의 하늘을 축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윤희는 순간 발끈한다.

"풍족하다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의 백성들은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백성은 느리게 소비할 재물조차 없습니다. 죽어라고 생산만 하지요. 가진 자들은 세상천지가 풍족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세상 천지가 부족한 것 투성이라니!"

그러자 재신이 빈정거리며 말한다.

"이봐, 재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재화가 한 곳으로만 몰리니까 다른 곳에선 부족한 거라고."

용화는 당황하여 윤희의 술잔에 술을 가득 부면서

"자네 대물 말이 맞아."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준은 윤희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이 네 명의 잘생긴 청년들은 이날 공자왈 맹자왈 순자왈 하면서 오래 된 조선의 문제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토론을 벌이는 것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성균관 곳곳에는 이러한 토론이 있다. 바둑을 두면서, 벽송정에서 풍류를 즐기다가, 반촌구석에서 삼삼오오 앉아 서학을 읽다가 등등등. 물론 이야기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그들은 성균관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용하가 선준에게 묻는다.

"자네 아버지는 노론 중 벽파의 중심인 것으로 아는데 자네는 시파인가?"

"노론 안에 벽파와 시파를 어찌 나눌 수 있겠습니까? 어제의 노론과 오늘의 노론이 한시도 같은 적이 없고, 노론 속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도 모두 다르고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임금께서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능히 나서서 충언을 올려야 하지요. 하지만 옳은 일을 하려는데 당파의 이익에 반한다고 맞서는 건 불충 중의 불충이 아닙니까. 내가 있는 노론을 향해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 시파가 되는 것입니까? 굳이 그런 식으로 나누자면 전 시파가 맞지요."

선준의 이 말은 정치를 하는데 있어 당파를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행은 순수한 선준의 말에 걱정이 앞선다. 재신이 말한다.

"과연 아버지를 이길 수 있겠는가. 이곳에서 개혁을 외쳐대던 유생들도 출사하여선 모두가 그 밥에 그 나물이 되어 버리지. 당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야."

모두가 선준을 안아준다. 윤희도 이순간만큼은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성균관의 유생으로서 선준을 안아준다. "가랑 형님, 언젠가 조정에 출사하여 이런 저런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지금의 고뇌도 잊게 되겠지요. 하지만 어쩌다 한 번은 떠올릴 날이 있을 겁니다."선준의 팔이 그녀를 감싸 주었다. 네 사람 뒤로 영조 임금의 어필이 새겨진 탕평비각이 어둠에 파묻힌 채로 함께 있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들 1권 끝

*개인적으로 드라마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선악의 대립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려다 보니 원작이 많이 훼손되었다. 안타깝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긴 줄거리 (제2권)

2. 장치기 놀이로 반궁(성균관) 일대가 왁자지껄하였다. 그동안 성균관의 존재 의미를 무시하던 걸오 문재신이 이 경기에 참가를 한다고 하자 동재의 유생들이 놀란다. 그동안 서재에 늘 패해왔던 유생들은 이번이야 말로 동재가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윤희는 머리가 어질어질하였다. 장치기 놀이를 하다가 바지가 벗겨지는 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경기에 빠지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얼굴에서 기운을 빼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선준이 이런 윤희의 꾀병스러운 모습을 보고 그렇게도 경기하기가 싫냐고 하자 윤희는 자신의 병약한 몸을 탓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용하가 각 경기의 참석자 명단마다 윤희의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걸오가 참석하는 바람에 윤희는 줄다리기 하나만 해도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다행이었다. 얼마 후, 이 장치기 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한양의 기생들이 납신다. 그것도 장안 최고의 기생이라는 초선이까지. 유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기생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용하는 기생 한 명 한 명마다 인사를 하여 과히 성균관의 색골다운 면모를 보였다. 경기 시작 전, 대사성(성균관의 으뜸 벼슬로 정3품에 해당)이 조회를 끝냈을 때 집춘문이 열렸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집춘문은 성균관과 궁궐 사이에 난 문으로 왕이 행차할 때 열리는 문이다. 모두가 긴장했다. 오늘 같은 날 왕은 명백한 방해꾼이었다. 왕이 보는 앞에서 어찌 버젓이 즐길 수가 있는가. 왕이 현학적이고 긴 연설을 끝내자 기생들의 군무가 있었고 뒤이어 초선의 독무가 행해졌다. 초선의 독무는 기생들의 군무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윤희가 황홀하게 초선의 춤을 바라보고 있자, 선준은 뭔지 모를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런 윤희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오전 경기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축국(1~9인이 공을 차는 경기로 공을 떨어뜨리면 지는 경기로 한국식 풋볼이라고 해야겠다.)이었다. 재신이 윤희 대신 나갔기 때문에 윤희는 천막 안에서 경기를 보며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축국을 하던 서재생이 천막에 앉아 있는 윤희를 향해 공을 차는 바람에 그 공은 윤희의 가슴을 강타했다. 윤희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재신이 이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하고 선준이 활약했지만 축국은 서재의 승리로 돌아갔다. 선준이 땀을 흘리며 천막 안으로 들어오자 윤희는 용하의 부채를 빼앗아 선준을 부쳐주었다. 윤희는 선준의 땀 냄새가 좋았다.

 

(장치기 경기)

3. 드디어 장치기 경기가 시작된다. 지금의 필드하키와 비슷한 경기로 막대기로 공을 집어넣은 경기다. 이 경기는 거칠기 때문에 경기 초부터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윤희는 걱정이 된다. 그렇다면 후보선수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도 먼저 맞는 법이 나은 법. 윤희는 어차피 자신이 나가야 할 경기라면 지금 나가는 것이 좋겠다면서 용하가 말리는데도 경기에 나선다. 경기 규칙도 제대로 모르는 윤희. 선준은 이런 윤희를 지켜주기 위해 그녀를 따라다니며 경기를 한다. 왕은 이런 윤희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한편 서재생들은 윤희를 혼내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왕이 참관하고 있는데도 기회를 봐서 윤희에게 해를 가하려고 하지만 선준이 늘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러다가 윤희는 발목을 맞았지만 계속 경기에 임했다. 그런데 경계가 느슨한 틈을 이용해 서재생 중의 한 명이 윤희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 순간 '퍽'소리가 났고, 윤희는 눈을 감았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 채를 받은 것은 선준이었다. 선준의 손에는 뚝뚝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채의 끝을 잡고 있었다. 유해를 입힌 서재생은 퇴장당하고 선준은 경기를 더는 뛸 수 없게 되었다. 선준은 걸오 재신에게 경기를 부탁하고 천막으로 들어온다. 용하와 함께 있게 된 선준. 용하는 선준의 표정을 보고 고민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지만 선준은 그럴 수 없다. 자신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선준은 심란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의 눈은 윤희만을 따르고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일전일퇴를 거듭하던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윤희가 어떨결에 공을 받아 상대편 구문으로 밀어 넣어 승리를 하게 된다. 윤희는 너무 기뻐 선준을 향해 달려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초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선준과 윤식(윤희)의 사이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초선은 순간 윤식과 선준이 혹 남색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줄다리기 경기. 여기서 동재와 서재의 승패가 결정이 된다. 선준은 윤희 옆에 서서 한 손으로 줄다리기를 하려고 하지만 갑자기 왕이 나타나 선준을 대신해서 경기에 참여하겠다고 한다. 모든 유생들이 송구스러워하자 왕인 자신을 의식하지 말고 열심히 하란다. 왕은 줄을 잡으면서 윤희의 손을 보았다. 다른 남자들의 손과는 전혀 다른 힘줄이 없는 고운 손. 3번의 줄다리기가 거행되었고, 마지막은 동재생들의 승리로 끝이 난다. 기생들은 이 경기에서 4명의 남자를 유심히 보았다. 바로 선준, 윤희, 재신, 용하...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줌이 절로 잘금거린다고 하여 '잘금 4인방'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다. 초선은 윤희가 자기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춤을 추면서 일부러 선준을 끌어들인다. 이를 보면 윤희가 질투를 내며 선준을 제치고 자기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윤희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초선은 쳐다보지도 않는게 아닌가. 초선을 따라간 선준은 이것은 윤식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핀잔을 준다. 초선은 놀란다. 어떻게 김 도령이 자신이 선준을 이끄는데도 가만히 있단 말인가. 초선은 김 도령이 남색일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윤희는 선준이 초선이와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그런 중 선준은 청지기에게 부용화가 왔다는 말을 듣고 부용화를 만나러 가고 윤희는 질투심으로 인해 선준이 명륜당 쪽으로 가자 그를 따라 간다. 하지만 다리는 휘청거려 제대로 걸을 수 없는데 누군가 부축을 해준다. 초선이었다. 초선은 대성전 입구까지 부축해 주었지만 이젠 기생이 들어갈 수 없는 금지구역이라 여기서부터는 윤희 혼자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윤희는 술을 먹은 후라 제 정신이 아니었다. 윤희가 넘어지는 소리에 선준이 가던 길을 멈추고 윤희가 자신을 따라오다 넘어진 것을 본다.

"가지 말아요. 가랑 형님!"

선준은 쓰러진 윤희를 안고 자신이 왜 같은 동성에게 이성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자기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윤희의 입술을 훙치려는 순간 재신이 나타나 정신을 퍼뜩 차린다. 재신이 술에 취한 윤희를 안고 중이방으로 가고 선준은 약속한 대로 부용화를 만나러 간다. 윤희를 눕혀 놓은 재신은 흙투성이가 된 윤희 옷을 벗겨주려다가 윤희가 여자임을 알게 된다. 재신은 취중에도 '가랑형'만 부르는 윤희를 보며 왜 여자가 성균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참 후에 윤희는 깨어나고 자신을 안고 들어온 사람이 재신이라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되었다. 물론 저고리가 벗겨진 것 아니었지만 혹 재신이 자신이 여자라는 걸 눈치챘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떨칠 수가 없다.

추문(醜聞)

1. 모두가 잠든 밤, 윤희는 비복청으로 들어간다. 목욕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다가 가마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불을 피워 물을 덥힌다. 이 때 서재의 하재생이 뒷간에 가다가 불을 지피는 대물 도령을 발견하고 이제나 저제나 대물도령을 괴롭힐 생각만 하던 임병춘에게 대물도령이 비복청에서 불을 지피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하여 4명의 하재생들은 윤식을 몰래 엿보기로 한다. 혹 반촌의 여인을 꼬여다가 부적절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윤희는 비복청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휙 옷을 걸쳐 입고 비복청 끝에 있는 창고로 들어간다. 물론 숨어서 엿보던 하재생들에게 여자임을 들키지 않았다. 감쪽같이 옷을 걸쳐 입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복청의 창고로 어떤 술취한 인간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윤희는 걸쳐 입었던 옷을 챙겨입었다. 윤희는 휘청거리는 그 사람이 걸오 문재신인 것을 알아챘다. 재신이 문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있음을 알고 "웬 놈들이냐, 도둑고양이처럼 어딜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냐!"라고 소리치자 서재의 하재생 일행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친다. 병춘은 그 소리가 걸오 문재신임을 직감하고 윤희와 걸오가 남색이라 단정짓는다. 병춘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떠오른다. 윤희가 아는 척을 하며 재신에게 다가가는데 그는 허리에 창을 맞았던 통증 때문에 잠시 기절한다. 윤희는 재신을 깨우기 위해 때리다가 그의 허리가 피투성이임을 발견하고, 수건을 빨아 피를 닦아내고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자 재신이 한사코 거부하기에 할 수 없이 향관청에서 담배 뭉치를 훔쳐가지고 나왔다. 이것이 지혈에는 특효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 홍벽서가 대사헌(문재신의 아버지임)의 집에 떡하니 벽서를 붙여놓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순라군 한 명이 홍벽서를 창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그 후 홍벽서란 자가 반촌으로 숨어들어 순라군들이 더는 추격하지 못했고, 홍벽서는 성균관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2.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도 문재신은 들어오지 않았다. 윤희는 비복청에서의 일을 선준과 얘기하고 싶었지만 재신이 한사코 비밀로 해 달라기에 의리를 지키기 위해 말하지 못함이 더 답답하였다. 선준이 먼저 잠자리에 들고 윤희는 더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선준의 잘생긴 얼굴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껴 더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환한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불을 껐는데 이날 따라 달이 밝아 선준의 아름다운 얼굴은 윤희의 눈에 계속 알짱대는 것이다. 윤희는 선준이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그의 손을 가만히 만진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져가 가만히 입을 맞춘다. 이 때 작은 돌덩이가 창문을 맞추는 소리가 들린다. 들창문을 여니 오랜만에 재신이 나타나 윤희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윤희를 창문 밖으로 끌어낸 재신은 대성전과 마주보이는 곳에 있는 큰 은행나무로 데려간다. 재신의 도움으로 은행나무 꼭대기에 올라 밤에 물든 세상을 바라보던 윤희는 가슴이 탁 트여 옴을 느낀다. 윤희가 여자인 것을 알지만 차마 아는 척을 하지 못하는 재신은 "너도 가랑이 좋겠지?"라고 묻는다. 재신은 윤희를 골려주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주지도 않고 중이방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선준이 밖에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선준은 왜 대물도령이 자기의 손을 만지고 입을 맞추었는지 생각하면서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자신만이 아니라 대물도 자기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윤희가 재신과 함께 나간 것을 알고 있는데 재신만 돌아오자 선준은 화를 내면서 윤희가 있는 곳을 묻는다. 나무에 매달아놓고 왔다고 하자 선준은 그 나무를 찾아 헤매고 드디어 대성전 맞은 편에 있는 은행나무까지 왔다. 선준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윤희를 받았는데 그 자세가 사뭇 민망스러워 둘은 얼른 자세를 고치고 바로 앉았다. 그날 선준은 윤희에게 왜 자신에게 입을 맞추었는지 물어보지 못한다.

3. 순두전강(열흘마다 치루는 시험으로 왕이 직접 구술형으로 문제를 내면 답을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음)이 있는 날 모두 왕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왕이 묻는 문제가 저번 술집에서 토론을 했던 그 내용이었다. 잘금 4인방은 깜짝 놀란다. 그 자리에 임금이 계셨던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결국 잘금 4인방은 최고의 성적으로 상품까지 챙겼다. 이 때 잘금 4인방을 보고 있던 장 박사가 흐린 미소를 짓는다.

순두전강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잘금 4인방을 보는 유생들의 표정이 좋지를 않다. 윤희가 한밤중에 비복청에서 걸오와 비역질(동성애 짓)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 수복(서원이나 관아에서 청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윤희가 은행나무 아래서 어떤 남자와 비역질하는 것도 보았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윤희는 억울했지만 이것이 모두가 오해할 만한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비역질이라니. 결국 이 소문의 진위를 해결하기 위해 재회가 열린다. 임병춘 등 4명이 계간(남성간의 유사 성교 행위)하는 것을 봤다고 하자 윤희는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재신과 그날 일은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문재신은 그날 대물 김윤식이 비복청에서 혼자 목욕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대물인지 확인하려고 비복청 창고에 숨어 있다가 먼저 와 있던 김윤식이 귀신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놀라 기절을 했고, 그것을 깨우려고 김윤식이 자기를 때렸단 것이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임병춘 일생에게 오해를 사게 한 것이 아니겠냐고. 그러고보니 재신이 말이 논리에 딱딱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하여 비복청의 계간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이선준은 은행나무 밑에서의 계간 소문까지 깨끗이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그날 나무에 매달려 있던 윤희를 구해주기 위해 갔다는 사실과 뛰어내리는 것을 받는 동작이 참 묘하게 되었더란 말을 한다. 이로써 은행나무 밑의 계간 소문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어 윤희와 걸오는 누명을 벗게 된다. 그 뒤, 병춘 일행은 재신에게 끌려가 벌을 받는다.

추문이 휩쓸고 지나간 뒤 모처럼만의 휴일이 찾아왔다. 순돌이가 선준을 찾아왔다. 선준은 아마도 오늘 부용화를 만날 모양이다. 윤희는 갑자기 힘이 쪽 빠지는 느낌이 든다. 윤희는 선준과 순돌 모두에게 냉정하게 대한다. 이날 윤희는 초선의 협박 편지를 받고 모란각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에 용하도 동행한다. 모란각에서 윤희가 초선을 만났을 때 그녀의 얼굴은 차가웠다. 초선은 윤희에게 선준과 계간하는 사이가 아니냐고 묻는다. 윤희는 사나이의 자존심을 그렇게 짓밟아도 되냐고 하면서 인연을 끊어야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초선은 대물이라고 소문이 난 윤희의 양물을 떼놓고 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윤희의 바지를 벗기려고 한다. 윤희가 난처한 입장에서 속바지가 벗겨질 찰나 구용하가 들어와서 싸움을 말린다.

"아무리 독한 년이라도 그렇지 감히 상유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놔? 내 살다 살다 계집이 사내 겁탈하는 거 처음 본다. 괘씸한 것 같으니."

용하가 흥분하자 윤희는 오히려 초선을 감싸준다. 모두 자기가 잘못한 거라면서. 다시 성균관으로 돌아오자 뜻밖에 집으로 간 줄 알았던 선준이 돌아와 있었다. 윤희의 옷차림이 엉망이 된 것을 본 선준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용하는 윤희가 겁탈당할 뻔했다고 말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상황이 어줍게 되자 윤희는 용하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선준도 따라 들어선다. 이 때 용하가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다가 둘을 보고 깜짝 놀란다. 홍벽서의 글이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홍벽서가 문재신이란 것을 추리해낸다. 이로 인해 선준은 윤희와 재신에게 가졌던 모든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우중정인(雨中情人) : 비 내리는 날 사건이 발생하다.

1. 말복 더위로 인해 성균관 유생들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이런 중에도 선준과 윤희만이 옷을 점잖게 갖춰 입고 있다. 윤희는 혹 허리가리개가 유생들의 눈에 띨까 하여 얇은 옷을 입지도 못한다. 용하는 잘금 4인방과 수박을 가지고 흥덕골 구경에 나서기로 했는데 어느덧 많은 유생들이 참여하여 수십 명이 일행이 되어 함께 가게 된다. 드디어 계곡에 도착하여 유생들은 바지를 걷어올리고 등목을 한다며 난리인데 윤희만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털없이 매끈한 다리가 혹 유생들의 눈에 띨까 봐. 이 때 유생들은 동료들을 한 명씩 던져 계곡물에 박아 넣는데 재신도 계곡물에 박히고 말았다. 다음 차례는 윤희. 재신은 "대물은 안 돼!"라고 소리친다. 대물이 여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큰일인 것이다. 재신은 대물이 몸이 약해서 병에 걸리지도 모른다며 그녀를 보호해 준다. 선준은 윤희가 발을 담그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약간 위의 계곡으로 끌고 올라가 발을 담그게 해 주었다. 선준이 언뜻 대물의 발을 보는데 너무 작고 매끈함이 이상했다. 19세면 벌써 아비가 될 나이인데 저렇게 여자처럼 매끈할 수가. 선준의 가슴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 때 재신이 수박을 들고 와 손으로 툭 쳐서 깨 주었다. 더운 날 계곡에서 먹는 수박의 맛은 퍽 달콤했다. 그런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재신은 먼저 내려가며 일행들을 비를 긋기 위한 장소로 인도하겠다며 얼른 내려오란다. 그런데 윤희의 상투가 나뭇가지에 걸린다. 선준은 윤희의 상투를 나뭇가지에서 떼어내려 하나 잘 되지 않는다. 윤희의 얼굴은 선준의 가슴과 거의 맞닿아 있는상황이었다. 상투를 나뭇가지에서 떼어내려는 선준의 손길이 느껴진다. 마치 머리카락에도 신경이 있는 것처럼 윤희의 가슴은 설레였다. 선준이 중얼거린다.

"이 상투가 없다고 한들, 사내가 아닐 수는 없는데..."

그런데 이때 윤희가 휘청하면서 폭포 아래로 빠지고 만다. 선준이 다이빙을 하여 윤희의 손목을 이끈다. 다행히 폭포수는 깊지 않았다. 선준은 물속에서 윤희의 입술을 덮친다. 그리고 물밖으로 나와서도. 선준은 그녀에게 성균관을 나갈 것이라고 한다. 자신은 이미 죄인이므로. 그런 선준에게 윤희는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한다. 선준은 윤희가 여자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 그녀의 옷고름을 풀었다. 그녀는 분명 여자였다. 결국 윤희는 빗속에서 선준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비공식적인 부부가 된 것이다.

(원작에서는 계곡에서 뜨거운 관계를 갖는데 드라마에서는 그냥

여자인 것만 확인하는 수준. 온 가족이 보는 드라마니까 원작대로 하면

큰일나죠. ^0^)

2. 유생들과 비를 피하고 있던 재신은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이 자식들은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흥분하고 있는 재신을 용하가 말린다. 용하는 대충 대물과 가랑 사이에 어떤 일이 오갔을지 짐작은 하고 있는 듯하다. 드디어 가랑과 대물이 나타났지만 재신은 뭔가 기분이 나빴다.

흥덕골을 나와 성균관으로 돌아가는 유생들. 중이방에 둘만이 있게 되자 선준이 윤희에게 괜찮냐고 묻는다. 윤희는 빗속에서의 그 일 때문에 열도 나고 몸이 아프다. 그러나 선준은 윤희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는 것 같다. 윤희는 부용화에게 미안해서 그녀의 얘기를 꺼내자 선준은 이미 부용화에겐 거절을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 때 갑자기 소지품 검사가 있다고 한다. 최근 나라에서 금하는 서적이나 불온한 글들을 소지하는 사람이 있어서 불시검문하겠다는 것이다. 용하는 이를 미리 알아채고 중이방에 있는 홍벽서의 글을 모아서 미리 매수해둔 서리에게 넘긴다. 소지품 검사가 무사히 끝나자 용하는 서리에게 다시 불온서적을 돌려받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책이 있다면서 춘화도첩을 보여준다. 성행위의 체위가 그려진 음란서적이다. 선준은 용하의 설명을 들으며 춘화도첩의 그림을 아주 세심히 보고 있다. 남자 세 명이 모두 음란물에 빠져 있어 중간에서 윤희는 어찌할 줄 모른다.

3. 한편 부용화인 효은은 선준으로부터 거절의 의사를 전해 받고 충격을 받아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효은이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고 하자 아버지 병조판서가 딸을 방문한다. 병조판서가 딸에게 이유를 묻자 좌상의 아들 이선준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음에 둔 정인이 있다며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마음 속 정인이 기생일 거라고 말한다. 그러자 병조판서는 사내란 한 번은 한눈을 팔게 되어 있다면서 좌상 댁에 청혼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병판은 곧 청혼서를 보내고 선준 몰래 혼사가 진행되었으나 순돌의 귀뜸으로 선준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선준은 순돌에게 귓속말로 김윤식이 자신의 아내될 이라고 말한다. 순돌은 자기가 그렇게나 존경하는 도련님이 남색인 줄만 알고

"쇤네도 예쁜 도련님이 좋은 분인 것은 알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옵니다."

라고 펄펄 뛰자 선준은 어쩔 수 없이 윤식이 여자임을 밝히고 순돌에게 도움을 청한다. 선준은 순돌과 집으로 간 후 사흘 뒤에야 돌아왔다. 그리고 요번 혼사건은 없던 것으로 했다는 말도 한다. 궁합이 맞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는 것이다. 윤희는 기가 막혔다.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쓰는 거절방법이다. 이 일로 선준은 물론 선준의 부친인 좌상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윤희는 걱정스러웠다.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러나 윤희는 선준과 혼례를 이룬다는 꿈을 꾸지 못한다. 한빈하기 짝인 없는 남인의 자식을 그 어떤 노론의 실세가 며느리로 삼을 것인가. 윤희는 성균관에 있는 동안 선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대과에 급제하여 모두 이곳을 나가게 된다면 그래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면 그 때 원치 않아도 이별을 하게 될 것이므로.

그런데 윤희의 걱정이 현실로 드러났다. 이선준이 잡혀간 것이다.  고위 관리들의 탐욕을 비난하는 벽서를 붙이고 다닌 홍벽서가 바로 이선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혼인을 거절당한 병판의 보복이었다. 윤희는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생긴 것이라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준은 점잖게 관군을 따라간다.

홍벽서

1. 윤희가 멍하니 있을 때 순돌이 찾아왔다. 선준은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감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순돌에게 윤희를 잘 지켜 달라고 했던 것이다. 재신과 용하도 선준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참으로 난처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균관 유생들은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선준을 가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상소를 올린다. 그러나 상소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한편 옥에 갇혀 있는 선준을 찾아온 병판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달리하면 풀어줄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선준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그 때 선준이 사헌부로 넘겨진다. 성균관 유생은 그 죄의 대소를 떠나 사헌부에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이 문재신의 아버지가 아닌가. 진짜 홍벽서인 문재신은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대사헌은 홍벽서가 자신의 아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제 노론과 소론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갈라졌고, 노론들 때문에 큰아들을 잃었으니 드디어 원수를 갚을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을 시켜 재신을 옭아맨 뒤 입에 재갈을 물리고 광에 가둔다. 한편 진짜 홍벽서가 나타나야 선준이 누명을 벗고 옥에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재신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윤희와 용하는 재신이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으로 대사헌의 집으로 가서 그를 직접 구해오기로 한다. 윤희, 순돌, 용하, 덕구아범은 대사헌의 집으로 몰래 들어가 재신을 업고 나온다. 그 뒤 선준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 진행된다. 그 계획은 6조 거리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진짜 홍벽서인 문재신이 6조를 비방하는 글을 쓰고, 선준을 구출하기 위해 모인 성균관 유생들을 6조 거리로 내보내기로 했다. 이 때 그동안 윤희에게 유해를 가했던 임병춘이 찾아온다. 선준을 구출해 내는 데 자신도 힘이 되겠다고 말이다. 윤희와 재신은 병춘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윤희가 육조 거리에 벽서를 붙이기 위해 나서자 재신이 가로막는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6조 거리가 아닌 다른 곳에 벽서를 붙이라 하고 용하를 데리고 사라진다. 윤희는 화가 난다. 왜 용하는 되고 자신은 되지 않는가!

윤희는 순돌이와 벽서를 붙일 곳을 찾다가 퇴궐하는 장 박사와 유 박사를 만난다. 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김윤식 유생, 홍벽서의 키에 맞추려면 옆의 덩치 큰 하인의 등을 밟고 올라가는 편이 나을 거요. 이런 조언을 하였으니 우리도 공범이 되고 말았군. 사실 우리도 홍벽서의 애호가요."

사실 유생들도 모두 홍벽서가 되겠다면서 6조 거리로 나가 있었다. 윤희는 이들이 모두 고마웠다. 문재신은 6조 거리의 이조, 예조, 병조, 공조, 형조, 호조의 문간에 모두 벽서를 붙이고 관군이 추격하자 마침 육조 거리에 나와 있던 유생들 틈으로 몸을 숨겼다. 선준이 갇혀 있는데도 홍벽서가 나타나 6조를 활보했다고 하자 대사헌은 선준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준은 감옥에서 풀려난 후, 자가인 북촌으로 가지 않고 곧 성균관으로 향했다. 그는 윤희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유생들이 선준의 귀환을 기뻐하고 있었다. 너도 나도 선준에게 안기며 축하를 하는 바람에 정작 윤희를 안을 시간은 놓치고 말았다. 축하파티가 끝나고 겨우 중이방에 단둘이만 남게 되었을 때 선준은 윤희를 꼭 안아 주었다. 그러나 윤희가 가랑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랑은 엄숙해졌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자기는 살고 싶지 않았을 거라면서. 그러자 윤희는 서방이 죽고 우는 열녀보다 서방을 구하다가 죽은 열녀가 더 낫다고 따져든다. 이렇게 사랑싸움을 하고 나자 문재신이 들어오고 뒤이어 구용하가 들어온다. 인경이 넘었는데도 그들은 웃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홍벽서의 글들을 방바닥에 깔아놓을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그 때 왕이 방문을 한다. 잘금 4인방은 깜짝 놀라지만 왕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왕은 잘금 4인방을 데리고 성균관에 있는 벽송정에 올랐다. 왕은 성균관에서 피터지게 공부하여 대과에 급제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빨리 자신이 곁으로 오라는 것이다. 왕이 돌아가고 재신과 용하도 돌아가 이젠 선준과 윤희만 남았다. 둘은 감격의 재회를 그냥 넘길 수 없다며 비복청에서 밀애를 나누려고 했으나 비복청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고 있는 재신과 용하 때문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뒤 선준은 윤희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로지 책만 파고 들었다. 신들린 사람처럼 말이다. 윤희가 그 어떤 표정과 말로 유혹해도 선준은 냉정하게 책만 읽고 있었다. 선준의 이런 태도에 윤희는 물론 재신과 용하도 가을과 겨울 내내 책만 뚫어지게 보았다. 시간은 흘러 다음 해 봄 잘금 4인방 모두는 대과를 치른다. 회시(복시)에서 33명 가량이 급제했고, 이중 전시 성적으로 갑과 3인, 을과 7인, 병과 23인으로 나눈다. 그러니까 갑과의 1등이 장원급제인 것이다.

전시가 끝나자 선준은 북촌의 집으로 돌아가고 윤희도 집으로 왔다. 그동안 지친 몸을 한꺼번에 잠재우듯이 줄곧 잠만 잤다. 잠에서 일어나 보니 품위있게 생긴 박물장수가 물건을 팔기 위해 윤희네 집으로 온다. 윤희는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살 게 없다고 하자 박물장수는 윤희에게 물을 청한다. 윤희는 따뜻한 숭늉을 대접하고 박물장수의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준다. 박물장수는 가세가 기울어 이런 장사를 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윤희의 요모조모를 뜯어본다. 그리고 갈 때쯤 윤희에게 빗 하나를 선물한다. 박물장수는 윤희의 집을 나와서 한적한 곳에서 기다리는 가마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북촌으로 돌아가자."

그 박물장수는 선준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드디어 전시의 성적이 발표되는 날.

윤희는 을과의 다섯 번째, 용하는 을과의 두 번째로 합격을 한다. 가장 높은 성적을 뽑는 갑과. 재신은 갑과의 탐화(3등)로 급제하였고, 장원은 이선준이었다. 왕은 기뻐하며 선준에게 어사화를 내린다. 그리고 곧 아버지 좌상 대감이 가까이 와 아들을 끌어안는다. 이 때 이선준 왈.

"아버지, 이제 약조를 지켜 주십시오."

좌상은 고개를 끄덕인다. 의정부 관청에서 급제자들을 위한 은영연을 베풀었다. 윤희의 얼굴엔 기쁨이 흘렀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이젠 정들었던 성균관 상유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니가. 그리고 선준과도. 하지만 선준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다. 공부할 때 엄격하기 짝이없던 그 태도와 그 표정은 간 데가 없다. 윤희는 한편으론 선준이 얄미웠다. 윤희는 답답한 마음에 육조거리로 나간다. 어느 틈엔가 선준도 동행하고 있었다. 한적한 곳에 이르자 선준은 윤희에게 입을 맞추고 지금 윤희네 집에 청혼서를 보냈다고 말한다. 윤희는 깜짝 놀란다. 그렇다면 선준이 그렇게 과거를 위해 책만을 파고들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는가.

그렇다. 장원을 하면 남인인 윤희와 혼례를 치르게 해 주겠다는 약조를 받은 것이다.

윤희는 동생 대신 치른 과거였기 때문에 이제 동생이 맘 편히 정무를 볼 수 있는 지방관 자리를 지원했다. 그런데 왕이 승지들이 올린 문서를 검토하다 보니 김윤식이 지방발령자로 되어 있지 않은가. 왕은 이를 보고 크게 노하며 좋은 성적을 받은 김윤식을 지방으로 발령내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규장각으로 보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작정을 한듯이 장원 이선준, 탐화 문재신, 을과 2등 구용하 모두를 규장각으로 배정하고, 성균관 박사로 있던 장상규와 유창익을 다시 규장각으로 불러들일 것을 명한다.

급제자들이 선정전에서 왕께 문안을 드리는 날, 선준과 윤희는 오지 않았다. 왕이 물으니 두 집안에 모두 혼례가 있다는 것이다. 윤식의 누이와 선준의 혼례식. 왕은 노론과 남인 집안의 혼례를 매우 흡족하게 생각한다. 왕은 상의원에 일러 윤식.. 아니, 윤식의 누이에게 가체를 선물할 것을 명하고, 재신과 용하는 임금의 선물을 가지고 남산골 윤희네 집으로 향한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끝

긴 줄거리를 올렸다. 책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드라마를 보면 더 재미있다.

어떤 이들은 내용을 알면 재미없다고 하는데...

그런 분들은 이 줄거리를 외면하시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권도 정리해 놓았으니 필요하신 분은 읽고 가세요. ^^(2권은 시간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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