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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갑의 정원이야기>튤립이 전하는 네덜란드 큐켄호프의 봄
네덜란드하면 '물의 도시'혹은 '풍차마을' 등이 생각나고,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자화상',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의 명작을 남긴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고향이라는 것도 떠오른다. 네덜란드는 한국에 관한 서양인 최초의 저술인 '하멜 표류기'의 저자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년)의 나라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2002년 한국축구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던 히딩크(Guus Hiddink)의 출신지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누군가에게 호감을 주거나 상징할만한 요소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것이 누구나 좋아할만한 '사람'혹은'꽃'이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고흐의 고향이고 나라를 대표할 만한 브랜드 가치를 지닌 '튤립'이 있어 아주 부러운 나라이다. 네덜란드는 전 국토의 3% 정도가 꽃 재배 생산지일 정도로 일명 '꽃의 나라'이다. 특히 튤립이 유명한데 튤립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큐켄호프(Keukenhof)이다. 큐켄호프 정원을 중심으로 반경 20km에 이르는 들판에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꽃 재배단지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튤립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큐켄호프 정원이 환상적인 자태를 하고 들어서 있다. 큐켄호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 정원(Spring Garden)으로 지명(地名) 자체에 이미 정원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15세기 이곳은 숲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한 백작부인의 사유지였다. 귀족들의 연회를 위해 허브와 야채를 재배하던 곳으로 사냥터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큐켄호프(Keukenhof)'라는 이름도 부엌(Kitchen)이라는 뜻의 '큐켄(Keuken)'과 정원(Garden)을 의미하는 '호프(hof)'가 합쳐진 데에서 유래되었다. 정원에 들어서면 7백만 송이의 튤립과 다알리아, 히아신스 등이 32만㎡의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붉은색, 노란색, 하얀색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수를 놓은 듯 정연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마치 양탄자처럼 잘 관리된 푸른 녹색잔디가 깔려 있고 요소요소에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수목들, 그리고 정원 이곳저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수변경관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큐켄호프 정원은 1840년경 조경가(造景家)인 얀 데이비드 조처(Jan David Zocher)가 아버지를 이어 본격적으로 조성했으며 지금은 네덜란드 제일의 화원(花園)이 되었다. 큐켄호프 정원의 꽃 전시는 1949년 당시 리세(Lisse)시의 초대시장인 람부이(Lambooy)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초 큐켄호프 성이 있던 곳에 28만㎡에 달하는 면적을 화훼정원(Flower Garden)으로 가꾸고 이듬해부터 튤립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는 리세 시(市)의 뛰어난 12명의 튤립구근 재배농부, 그리고 수출업자 등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이후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아름다운 튤립을 선보이기 위해 '야외 꽃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방문객수가 증가하게 되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꽃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축제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유럽의 봄은 큐켄호프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큐켄호프는 일명 '유럽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튤립은 사랑의 꽃이다. 하지만...
튤립의 원산지는 파미르 고원(Pamir Mountains)으로 유목민들에 의해 페르시아와 터키 등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꽃은 터키에서 워낙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이슬람교도들이 머리에 쓴 '터번(Turban)'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튤립(Tulip)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593년 샤를 드 레클루즈(Charles de l'Ecluse)라는 식물학자에 의해 처음 네덜란드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는 네덜란드가 스페인 점령에서 벗어나 성장할 무렵으로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튤립을 부(富)와 교양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네덜란드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튤립은 백합과 구근초로서 지금은 정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이다. 꽃은 붉은 색을 비롯하여 다양한 색상들을 접할 수 있는데, 순백색에서 노란색과 자주색, 보라색은 물론 심지어 검정에 가까운 색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에는 약 4000여 종의 신품종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개나리, 진달래 등이 봄을 대표하는 꽃들이라고 한다면 유럽에서는 튤립이 봄을 대표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튤립이 축제나 정원과 관련해서 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서도 엄청나게 주목을 받은 에피소드가 있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터키 원산의 튤립이 큰 인기를 끌었고, 이윽고 튤립에 대한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꽃이 피기도 전에 미리 계약하여 사고파는 선물거래(先物去來)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이와 같은 열풍은 네덜란드에서는 1633년에서 1637년 사이에 절정에 이르렀다. 그 이전까지는 튤립 매매를 직업으로 한 재배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졌으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평범한 중산층이나 저소득층 사람들마저 튤립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구근을 사서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팔기 위해 집과 토지, 그리고 공장을 저당 잡힐 정도였다고 한다. 튤립은 구근이 수확되기도 전에 거래가 이루어졌고 귀한 변종들은 한 뿌리에 수백 달러 상당의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과연 가격이 언제까지 오를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된 상황에서 1637년 초에 돌연 파국이 찾아왔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튤립 가격이 붕괴되면서 네덜란드의 많은 평범한 가정들이 파산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1636년 12월에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한 팸플릿은 희귀한 꽃을 피우는 튤립구근 한 뿌리를 팔아 살 수 있는 상품목록을 제시한 바 있었는데 요컨대 살찐 돼지 8마리, 살찐 황소 4마리, 살찐 양 12마리, 밀 24톤, 와인 2통 등이었다. 구근 한 뿌리로 한 재산 만들어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투기현상이 벌어진 결과 발생한 현상이다.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전역에 휘몰아쳤던 '튤립파동(Tulip Bubble)'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투기 사례 중 하나이며 네덜란드는 물론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 거품현상(Bubble Phenomenon)으로 기록될 정도이다. '튤립파동'이란 용어는 그 이후 거대한 경제적 거품을 말할 때 흔히 사용하게 되었다. 튤립의 품종이 다양한 만큼 꽃 색깔에 따라 그 꽃말도 다양하다. 빨간색은 '사랑의 고백'인 반면 하얀색은 '실연', '용서'이고, 노란색 튤립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혹은 '희망'이다. 또 자주색은 '영원한 사랑'인데 자주색보다 진한 보라색은 '영원하지 않은 사랑'이다. 그리고 검정색 튤립의 꽃말은 '나는 사랑에 불타고 있다' 혹은 '사랑의 저주'라고 한다. 대개 꽃에 붙여지는 꽃말은 아름답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튤립만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튤립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 등으로 연상되는 인간의 이중적 내면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등장한 소설이 있었는데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의 소설 '검은 튤립(Black Tulip)'이다. 당시 튤립파동이 담긴 내용인데 꽃을 꽃으로 보지 못하고 투기를 통해 경제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풍조에 대해 픽션을 가미해 그린 작품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튤립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색깔의 품종개발에 몰두하기도 했는데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허무한 욕망을 '검은 튤립'에 비유한 것이다. 꽃이나 정원을 가꾸는 일은 우리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고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그 안에 분명히 위로와 치유가 있고 또 사람들에게 영감과 활력을 주기도 한다. 흔히 꽃을 선물하는 것도 자신의 순수성과 진실함을 말로 표현하는 대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누구나 꽃을 받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움직여 감동하는 것 아닐까. 마찬가지로 정원을 가꾸는 일도 자연 본연의 가치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그것을 공동체와 더불어 나눌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튤립이 아름다운 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고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꽃이 주는 감동이나 진정한 가치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 본질에서 벗어나면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Utopia)' 대신 뜻하지 않는'디스토피아(Dystopia)'가 도래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