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 작품 천상병 - gwicheon jagpum cheonsangbyeong

귀천(歸天) - 천상병(千祥炳)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작가 : 천상병(千祥炳)

1930년 경상남도 창원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수학

1952󰡔문예󰡕에 시 <강물>, <갈매기>가 추천되어 등단

1952󰡔현대문학󰡕에 평론 추천

1993년 사망

시집 : 󰡔󰡕(1971), 󰡔주막(酒幕)에서󰡕(1979),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작가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시인, 경남 창원 출생. 자신의 시에서 가난이 내 직업이라고 썼을 정도로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살면서도 맑고 투명한 시정신을 유지하면서 삶에 대한 무욕(無慾)과 무사심(無私心)을 보여 주는 시를 발표하였다.

시구 풀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순명(順命)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이러한 순명의 태도는 하늘이 자기 존재가 비롯된 곳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이 점을 말해 준다. 그는 죽음을 모든 것을 종말로 이끄는 돌발적인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즉, 자기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죽음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색채가 아니라 밝고 건강한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이슬노을빛은 모두 잠깐 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노을빛과 함께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말한 것은 삶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시인의 소망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문자 그대로 무욕(無慾)과 무사심(無私心)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무욕과 무사심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굳이 삶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닥쳐 올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처럼 담담하게 삶과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시인은 자신의 삶을 즐거운 소풍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신이 천상의 세계에서 세속의 세계로 소풍을 나왔다가 다시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천사)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절은 자신의 맑고 깨끗한 삶에 대한 자족감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아름다움의 주체는 이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가난과 슬픔과 고통의 연속인 삶이요, 그에게 오욕(汚辱)과 가난을 강요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시인이 세속적인 욕망이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자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의 초점

1: 이슬과 더불어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했다. 먼저 하늘로 감’(죽음)이 아니고 돌아감에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는 하늘에서부터 왔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슬과 더불어라는 말은 서정적 자아가 하늘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으로 보여 주는 것은 서정적 자아가 이승을 살아가는 자세다.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순수하게 즉 인간적인 욕심에 집착하지 않고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2: 1연과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이슬노을빛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두 사물의 이미지는 한결같이 투명하고 아름답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그것들이 사라지는모습이다. 매우 자연스럽고 가볍다. ‘새벽빛이 와 닿자마자 스러지고’, 구름이 손짓하며는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이 아름다운 사라짐의 모습이 바로 서정적 자아가 바라는 자신의 하늘로 돌아감의 모습이다. 서정적 자아에게 있어 죽음이란 자연 혹은 우주로 돌아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아름답기도 한 것일 뿐이다.

3; 결국 이 시가 보여 주는 것은 사라짐의 미학이다. 그것은 인간과 우주가 본래적으로 같은 것이었음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기에, 사라짐의 모습은 아름답고 깨끗하다. 그러한 현실 인식은 곧바로 이승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 무욕의 시선에서 삶을 바라볼 때, 비록 삶은 고달플지라도, 그것은 아름다운 소풍일 수 있는 것이다.

감상의 초점

천상병의 시에서 우리는 순진무구(純眞無垢)와 무욕(無慾)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코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을 말하면서 구차스러워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사(詩史)에서 매우 이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한국의 전통적인 토종의 시인이자 영원한 자유인으로, 오직 술과 문학만으로 살았던 시인의 삶과 비애를 평이한 말과 형식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시이다.

하늘소풍의 의미

반복되고 있는 시구 하늘로 돌아가리라에는 하늘로부터 왔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물론 그것은 일차적으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수락하겠다는 것이지만, 결코 생에 대한 비극적 인식의 표현이 아니다. <귀천>에 있어 하늘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인간이 온 곳이고 갈 곳인 우주 혹은 영원성의 표상이다. 이에 비할 때 인간의 삶은 그 도저한 영원성의 우주에 내던져진 유한한 존재일 따름이다. 무욕과 순진의 시선에 의해 비로소 순환하는 우주의 흐름과 그 속에 놓여진 순간적 존재인 인간은 긍정되고 아름답게 보여진다. ‘이 아름다운 소풍으로 긍정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슬노을빛의 의미

이 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심상들이다. ‘이슬은 햇볕이 비침과 동시에, 그리고 노을빛은 어둠이 덮임과 동시에 사라지는 유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그것들은 덧없고 허망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순간까지 그 자체가 지닌 투명함과 아름다움과 신선함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혹은 노을빛과 함께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진술한 것은 그 속에 시인 자신의 삶이 실제로 그 같은 경지에 도달했다는 자족감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가 시인의 생애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감상해야 이 시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

< 감상의 길잡이 1 >

세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매 첫행에서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죽는다는 뜻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말 대신에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사람의 말투다. 두고 가야할 세상에 대해 미련도 집착도 없는 무욕(無慾)의 경지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하늘로 돌아가면서 그가 동반할 것이라고는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노을빛밖에 없다는 말에서도 이 세상의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운 자의 달관을 보게 된다. 이승에서의 삶을 하나의 소풍에 견줄 수 있다면, 화자는 마치 하늘에서 잠시 귀양살러 온 신선과도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를 신선 같은 삶을 산 자의 노래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의 삶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어지간히 괴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에 놓인 말없음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라. 아름다웠다라는 말은 괴로웠다는 말의 역설처럼 들리지는 않는가.

그러나 괴롭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괴로웠다고 말하지 않는 데 이 시인의 미덕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죽음으로 해서 잃게 될 소유물들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그러한 일반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는 세 연의 서두에서 똑같은 어조로 말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다. 셋째 연의 말처럼 이 세상의 삶이 마치 한 차례의 소풍인 것처럼 그는 선선히 `돌아가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로 돌아갈 때 그가 동반하는 것이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노을빛' 같은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의 언젠가 있을 죽음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듯이, 그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누리는 소유물들에 별로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으므로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으므로 죽음을 억지로 피해 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만 읽고 만다면 아직 이 시를 충분하게 음미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선선한 태도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한껏 즐겁게 누렸기 때문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작품 전체의 어조와 분위기는 이와 달리 어떤 애조 띤 빛깔로 덮여 있다.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삶이란 매우 괴로운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 속에서 그는 가족, 친구와 더불어 넉넉하다 할 수 없는 삶을 누려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짐작하면서 그는 새삼스럽게 그 아쉬운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나 끝없는 집착이란 얼마나 괴롭고 무의미한 것인가? 그리하여 그는 지나온 삶의 자취 속에서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으면서 그래도 자신은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았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래하는 간결한 말씨 속에서 우리는 지나 온 삶의 괴로움과 회한을 지그시 다스리며 아름다움을 읽어 내는 맑은 눈을 본다. [해설: 김흥규]

핵심 정리

성격 : 시각적, 서술적

운율 : 3음보의 반복과 변조

어조 : 내면적, 독백적 어조

표현 : 감정이입, 반복법, 상징법

특징 :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의 정신을, 세속을 초월한 달관의 세계와 조화시킴.

구성

: 이슬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리라.(1)

: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리라.(2)

: 하늘로 돌아가 이 세상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3)

제재 : 귀천(歸天)

주제 : 삶에 대한 달관과 죽음에 대한 체관.(삶을 초극한 죽음에의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는 시인이 추구해 온 세계가 어떤 세계로 나타나 있는가? 두 어절로 답하라.

무욕(無慾)의 세계

2. 이 시에서 '하늘이 상징하는 의미를 40자 내외로 쓰라.

지상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유로움과 초월성을 획득한 세계

3. 화자는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라고 말했지만 언표(言表)된 사실과 내심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 말이 지니는 역설적 의미를 한 단어로 쓰라.

괴로웠다.

<맥락 읽기>

1. 시 속에서 말하는 이는?

2. 시의 화자는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추측해보자)

3. 시의 화자가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늘로 돌아 가는 것.

4. 그 때의 상황은 어떨까?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5. 이런 상황을 가진 날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곳을 찾는다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6. (우리의 삶에서) 그 날은 언제일까?

죽는 날

7.시의 화자는 자신이 살던 이 세상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할까?

소풍같이 아름다운 날

7-1. 정말로 그러했을까?

8. 이 시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 시구를 찾는다면?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9. ‘하늘이라는 말이 지닌 추상적 의미를 생각해볼까?

평안한 집,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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