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중요하다 명언 - gibon-i jung-yohada myeong-eon

[논어 명언명구]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기본은 출발 지점이기도 하고 회귀할 지점이기도 하다.

기본 없이 시작할 수는 있지만 오래갈 수는 없다.

언어를 배우려면 알파벳을 외우고, 운동을 잘 하려면 체력을 기르고, 군대에 가면 제식훈련을 되풀이하고, 책을 읽으려면 낱말의 뜻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는 모두 다른 상황에 해당되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알파벳, 체력, 제식훈련, 낱말은 모두 기본에 해당된다. 알파벳을 외우기 어렵다고 건너뛰면, 하나의 언어를 자유롭게 말하고 읽고 쓸 수 없다. 체력을 갖추지 않는 운동선수가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제 기량을 완전하게 발휘할 수 없다.

기본은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처음에 반드시 내 것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기도 하고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절차이기도 하다. 한 분야의 기본을 갖추면서 ‘나’는 그 분야에 들어설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상황에 따라 말을 자주 바꾸는 공인,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책임자, 문제가 생기면 우왕좌왕하는 지도자가 있다. 이렇게 기본을 갖추지 않고 일을 시작하면 개인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위태롭게 만든다. 기본에서 출발하고 기본으로 돌아가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논어> 학이(學而)편 2장

— 2번째 원문

유자가 말했다.

“사람 됨됨이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들에게 공손하면서

걸핏하면 윗사람들에게 대거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에게 대거리하기를 반대하면서

툭하면 공동체에서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은 없었다.

군자는 기초를 다지는 데에 힘쓴다.

기초가 제대로 서면 나아갈 길이 눈앞에 생기기(열리기) 때문이다.

효도와 공손은 틀림없이 사람다움을 여는 뿌리일 것이다.“

유자는 공자의 제자 유약(有若)을 가리킨다. 유자는 노나라 출신으로 공자보다 43세 젊었다. <논어>에서 유자는 증자(曾子)와 함께 공자의 제자 중에 ‘자(子)’라는 존칭으로 거명되고 있다. 다른 제자들은 대부분 이름 아니면 자(字)로 거명된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두 사람은 제자 그룹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는 점이다. 둘째, 두 사람은 <논어>의 편집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유자는 외모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일화를 남겼다. 공자가 죽자 제자들은 지도자를 잃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들은 공자와 생김새가 닮은 유자를 스승처럼 모셔서 상실감을 메우고자 했다. 그렇지만 기대를 모은 유자는 결코 공자 선생님과 같은 학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공자의 자리를 잇지 못했다.

공자(왼쪽)와 공자의 제자 유자의 초상화 공자를 빼닮은 외모 때문에 유자는 공자 타계 이후 한때 공자 제자들에 의해 스승으로 받들어지기도 했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출처: 중국역대인물초상화)

제(弟)는 형제 관계에서 동생, 아우를 가리키지만 여기서 아우가 형에 대해 가져야 할 덕목을 나타낸다. 즉 제(弟)는 형을 공경하다는 제(悌)의 뜻이다. 호(好)는 좋아하다의 뜻이지만 감정적인 맥락보다는 걸핏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범(犯)은 해치다, 어기다의 뜻이다. 선(鮮)은 곱다, 아름답다, 신선하다의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 드물다는 부사로 쓰인다.

상(上)은 위의 뜻이지만 여기서 위에 있는 사람, 즉 윗사람을 가리킨다. 난(亂)은 어지럽다, 뒤죽박죽이 되다의 뜻으로 사회적 혼란을 가리킨다. 작란(作亂)은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놀이를 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재미를 위해 평소하지 않던 언행을 하기 때문에 어지럽힌다는 난(亂) 자를 쓰는 것이다. 원의에 따르면 ‘작란’은 반란을 일으킨다는 무거운 뜻을 나타낸다. 무(務)는 힘쓰다, 노력하다의 뜻이다. 본(本)은 밑, 뿌리, 기초, 근원의 뜻이다. 도(道)는 길, 방법의 뜻이다.

현상 너머 근원을 찾아라

유자의 발언을 읽어보면 당시에 하극상과 반란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었다. 범상(犯上)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와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침범하는 것이다. 작란(作亂)은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는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범상과 작란은 각각 신분사회의 기둥을 이루는 질서를 뿌리째 뽑는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범상과 작란이 일어나면 그 사건의 주동자를 처벌하면 된다. 주동자는 사회질서를 파괴한 책임만큼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자는 이러한 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범상과 작란의 사건을 심층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보았다. 범상과 작란의 사건이 일어나면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여건과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벌어졌다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유자는 유감없이 철학자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범상과 작란의 사건 자체에만 주목하지 않고 사건 너머에 있는 근원을 찾으려고 한다. 철학자들의 시선은 현상을 너머 근원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2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본받을 만한 관점이다.

오늘날 우리도 끔찍한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고 ‘수퍼 갑질’처럼 인권 침해의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어느 하나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조직을 바꾸고 책임자를 문책한다고 하고 국회는 법률을 제정한다지만, 반복되는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시민들은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 우리 시대에도 유자처럼 사건을 수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상 너머에 사건을 낳은 근원을 찾는 사상가가 나와야 한다.

가족윤리와 사회윤리

이제 유자가 범상과 작란을 해결하고자 하는 대책을 살펴보자. 유자는 효제(孝弟)를 범상과 작란을 막을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공손하면, 하극상을 일으키지 않게 되고, 하극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사회적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논법이다. 거꾸로 살펴보면 반란은 하극상을 일으킨 사람이 저지르고 하극상은 효도와 공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으로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공손하지 않으면서 범상과 작란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이 생겨난 것이다.

사람의 행동을 이해관계(利害關係)로 설명하는 사람이라면 유자와 다른 주장을 할 것이다. 예컨대 한비자(韓非子)는 가족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가 결국 이익과 손해의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왕의 권력은 누구나 탐내는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왕은 피지배자들의 반란보다는 궁정 내부 인사에 의해 살해되었다. 특히 왕의 지근거리에 있는 왕비와 왕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미래까지 연장하기 위해 왕을 살해했다. 한비자는 사람들이 그릇된 욕망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범상과 작란을 일으키면 얼마나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지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한비자는 가족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가 결국 이익과 손해의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출처: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유자와 한비자는 각각 상이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유자는 사람이 가족윤리에 충실하면 사회윤리를 준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가족윤리는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근간인 것이다. 반면 한비자는 가족과 사회를 나누지 않고 이해(利害)라는 단일한 기준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해는 사람이 하게 되는 행위의 유일한 원인과 목적이다.

우리는 현상 너머의 근원을 찾아가는 사고방식을 본받을 수 있지만 유자의 결론마저 본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유가가 중시했던 가족윤리로는 오늘날 낯선 사람들끼리 대등하게 거래하는 시민사회의 인간관계를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에 맞는 시민윤리, 즉 자유와 평등의 인권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무본(務本)은 결국 성찰적 균형

유자는 효제를, 범상과 작란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뒤에, 무본(務本)과 본립도생(本立道生)을 언급한다. 두 부분을 종합하면 효제가 범상과 작란을 막는 무본(務本)이자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맥락이다. 무본(務本)은 본에 힘쓴다는 뜻이고, 본립도생(本立道生)은 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처럼 유자는 두 차례에 걸쳐서 무본(務本)과 입본(立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무본(務本)과 입본(立本)은 타동사와 목적어의 구문으로 되어 있다. 무(務)는 힘쓴다는 뜻으로 평소보다 더 집중하는 것이고, 입(立)은 세운다는 뜻으로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본(務本)과 입본(立本)에는 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힘에 맞서서 본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적인 노력을 담고 있다.

사람은 탐욕이든 이해든 감정이든 이성이든 어느 것에 한번 기울어지면 그쪽으로 나아가려는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 연인이 사랑의 감정에 빠져 있을 때 가족을 비롯한 그 누가 반대를 해도 그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겨울철 스키와 여름철 수상레저에 맛이 들리면 만사를 제쳐놓고 스포츠를 즐기려는 마음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청소년이 이슬람 국가의 테러에 동조하게 되면 다른 어떤 반대 이유를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다른 한쪽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때 무본(務本)과 입본(立本)은 먼저 한쪽에 빠진 ‘나’를 객관적인 거리감을 갖게 하여 다른 한쪽 말을 들어서 둘 중에 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가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서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성찰적 균형의 회복이다.

자꾸만 이전의 ‘나’에 빠져서 나오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경우, 다른 이야기를 듣게 하려면 힘쓰는 무(務)와 세우는 입(立)이 필요한 것이다. 본(本)에 힘쓰고 세울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불통(不通)의 고집과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를 이기겠다는 대립의 오기(傲氣)를 벗어날 수 있다. 본(本)에 힘쓰지도 세우지도 않으면서 “소통하겠다”고 하고 “상생하겠다”고 말해도 그것은 말일 뿐 결코 행동으로 드러날 수가 없다.

원칙주의자와 융통성

기본은 무슨 일을 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자질이고 문제가 생기면 되돌아와서 점검해야 할 바탕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키고 누구라도 존중해야 할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원칙은 현실을 규제하지만 추상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원칙이 현실을 적용하려고 하면 원칙의 보편성과 현실의 특수성이 삐거덕거릴 수가 있다. 원칙의 고수와 융통성의 발휘가 접점을 찾을 때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줄어든다.

요즘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되는 있는 복지논쟁의 경우도 그러하다. 누구라도 복지의 혜택을 늘리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래야 국민이 생활하는 삶의 질이 향상되고,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를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도 예산이 있어야 실행이 가능하다. 최근에 증세를 해서라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복지를 확대해야 하느냐, 아니면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무상의 복지를 축소해야 하느냐가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증세냐 아니냐?”가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저출산, 청년실업, 조기퇴직 등의 지표에서 보이듯 삶의 불안과 위험이 늘어나고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아닐까. 증세 여부가 초점이 아니라 우리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의 설정이 초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원칙에 달려 있다.

원칙이 서지 않으면, 즉 무본(務本)과 입본(立本)이 되지 않으면 도불생(道不生)이 되는 것이다. 2015년 초의 연말정산과 건강보험료 개편안 파동에서 보이듯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면 정책을 소리 소문 없이 거두어들이게 된다. 무본(務本)과 입본(立本)이 되어 있어야 정책의 방향을 홍보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그저 비용의 계산으로 단순화되어 논의가 빈약해진다. 본립도생(本立道生)으로 원칙과 융통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면, 융통성 없는 원칙이 고지식하고 원칙 없는 융통성은 무책임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신정근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철학>동양철학  201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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